brunch

매거진 읽은 것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마 밑 Oct 11. 2016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는 확실함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표지. /Daum 책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전교 1등이 '누구나 공부하면 1등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소설 쓰기든 1등이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그는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 혹은 특출하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 맞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인생은 비극이다' 같은 명제를 자세하고 길게 설명하는 것이 소설이기 때문에 머리 좋은 사람들은 이런 비효율적인 작업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직업인 소설가에 대해 길게 설명한 책이다.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정의를 책 한 권 분량으로 썼다. 여기서 무엇이든 자세하고 길게 설명하는 비효율적인 사람이 소설가라는 그의 말은 설득력을 얻는다.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지속적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선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장편소설을 집필할 때 매일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을 꾸준히 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소설이 가치를 인정 받는 데에도 시간의 역할은 중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며 "한 편의 작품이 진실로 뛰어나다면 합당한 시간의 시련을 거쳐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 작품을 기억에 담아"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대로 무엇이든 자세하고 길게 쓴 뒤에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 그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는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에서 무엇이든 단정 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운'을 빼놓지 않는다. '운'이란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삶이 어떻게 될지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때 그가 말하는 소설가의 작업은 삶과 비슷하다. 그는 소설 쓰기란 "'이를테면'을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의 모호한 부분을 '이를테면 이러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또 거기에서 모호한 부분을 다시 한번 '이를테면 이러한 것이다'라고 반복하는 작업이 소설 쓰기란 것이다. 아무리 '이를테면'을 반복해도 '모호함'이라는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운'이라는 불확실성은 삶에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운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의 작가 매뉴얼을 그대로 따라 한다 해도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삶의 불확실성을 회피하지 못하는 우리는 이 불안감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엇이 필요하고 불필요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질문을 제시한다. 소설가로 산 지 삼십 년이 넘은 그는 여전히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기서도 단정 짓진 않는다. 그는 "나 자신이 즐거우면 그게 결과적으로 뛰어난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은 아"니라며 최소한의 지지자를 확보하고 "준열한 자기 상대화 작업"을 하는 것이 프로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삶에 있어 아무것도 확실치 않다는 사실로 인한 불안감을 우리는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을 써볼까 고민하는 순간 "정말로 행복"하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은 우리가 그 불안감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2016.10.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