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은 것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마 밑 Oct 13. 2016

우리 모두는 스파이다

책 <고요한 밤의 눈>을 읽고

책 <고요한 밤의 눈> 표지. /Daum 책


*이 글은 책 <고요한 밤의 눈>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스파이가 여럿 나온다. 스파이의 임무는 세부적으로는 다르나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현 사회 시스템을 공고히 유지하는 것. 그 사회는 구십 퍼센트의 희생 위에 십 퍼센트가 안락함을 누리는 곳이다. 이러한 소설의 설정은 당연하게도 우리 현실에 대한 은유다. 이 점에서 우리는 모두 이 소설 속 스파이와 닮았다. 계층 간 사다리가 점차 없어지고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스파이처럼 서로를 기만하고, 심지어 스스로까지 속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침묵은 때로 암묵적 동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침묵하는 우리는 이 현실의 스파이로 활동 중이다.


우리는 왜 스파이가 되는 걸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시키는 방법"을 배워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에게 "왜 그래야만 하느냐는 질문은 사치"다. 소설에선 스파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십 퍼센트의 사람들로 나온다. 그들은 감시와 조작을 통해 현 사회 구조를 유지시킨다. 그러나 소설은 이러한 시스템의 기획자 역시 알고 보면 시스템의 일부라고 말한다. 스파이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세상을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하며 구십 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체스판 위의 말로 취급한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체스판 전체가 또 하나의 말"이다. 구십 퍼센트 위에는 십 퍼센트, 십 퍼센트의 위에는 일 퍼센트가 있는 법이다. 그야말로 서로가 속고 속이는, 모두가 스파이인 세상이다.


모두가 스파이인 세상을 바꾸는 방법으로 소설이 제시하는 것은 다른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이다. 이 소설에서 소설가 Z는 그러한 상상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소설가의 소설은 하나의 세계이자 다른 세상에 대한 가능성이다. 그는 이제는 사라져만 가는 '혁명'이란 단어를 써 내려가며 소설 속 세계의 희망을 빚는 존재다. 소설 속 몇몇 스파이들은 소설가를 도우며 다른 세상을 도모하는 이중 스파이가 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명제는 너무나도 강력해서 변화의 희망을 모조리 씻어내 '혁명'은 역사책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돼버렸다. "승자들이 인멸한" 희망의 증거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상상력뿐이다. 다른 현실을 상상하는 사람은 혁명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명의 혁명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소설은 말한다. "매 순간 한 사람 한 사람이 피우는 장미가 모여 백만 송이 장미가" 되는 것처럼 '바꿀 수 있다는 상상력'을 품은 사람이 많아져야 달라질 수 있다. 이 소설은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라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첫 문장의 스파이가 침묵과 감시로 '현 시스템'을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스파이라면, 마지막 문장의 스파이는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이중 스파이다. 이중 스파이가 스파이보다 많아지는 현실이 올 수 있을까. 한겨울 아침 일어나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인 광경을 본 적 있는가. 혁명은 그렇게 고요한 밤의 눈처럼 조용히 그리고 갑자기 다가올 수 있다.


(2016.10.13)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는 확실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