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들은 것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마 밑 Oct 18. 2016

삶을 유예할 순 없기에

9와 숫자들의 <유예>를 듣고

9와 숫자들의 앨범 <유예> 커버. /카카오뮤직


유예

-9와 숫자들


작은 조약돌이 되고 말았네
잔물결에도 휩쓸리는
험한 산중 바위들처럼
굳세게 살고 싶었는데

작은 종달새가 되고 말았네
하릴없이 조잘거리는
깊은 밤중 부엉이처럼
말없이 살고 싶었는데

연체되었네 우리 마음은
완전함은 결코 없다고 해도
부족함이 난 더 싫은데
내일, 모레, 글피, 나흘, 닷새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빛을 잃은 나의 공책 위에는
찢기고 구겨진 흔적뿐
몇 장이 남았는지 몰라
무얼 더 그릴 수 있을지도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중
하나의 색만이 허락된다면
모두 검게 칠해버릴 거야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끔

연체되었네 우리 마음은
완전함은 결코 없다고 해도
부족함을 난 견딜 수 없어
자꾸 떠나기만 했는걸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연체되었네 우리 마음은
완전함은 결코 없다고 해도
부족함이 난 더 싫은데
내일, 모레, 글피, 나흘, 닷새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유예>는 듣는 재미가 있는 노래다. 가사와 멜로디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감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이루는 점에서 그렇다. 가사만 보면 <유예>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슬픈 심정이 드러나 있다. 이런 가사에 맞게 보컬 역시 힘이 한껏 빠져 있다. 하지만 이런 가사와 보컬에 경쾌한 기타음이 묘하게 어울린다. 기타음은 앞으로의 희망을 연주하듯 슬픈 가사에 발랄한 존재감으로 이 노래의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산중 바위나 밤중 부엉이가 되고 싶던 화자는 작은 조약돌과 종달새가 되고 말았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퍼즐의 빈 곳처럼 언제나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내 삶의 부족한 부분이다. 마음은 그렇게 채워지지 못하고 '연체'된다. 그러나 화자는 고독하지 않다. "완전함은 결코 없다"는 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연체되었다고 화자는 노래한다.


원하는 바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꿈이 유예됐다고' 말하는 화자는 그렇게 "내일, 모레, 글피, 나흘, 닷새"를 흘려보낸다. 문제는 꿈이 유예된 사실 자체가 아니라 꿈이 유예된 상태에서도 삶은 지속된다는 점이다. 삶의 남은 페이지에 "무얼 더 그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삶이 흘러가니 '부족함을 견딜 수 없는' 우리는 그 사실을 견디기 어렵다. 꿈과 삶을 함께 유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끝내 희망을 버리진 않는다. 그러므로 화자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유예하는 것이다. 이루는 시간을 미루고, 자신이 그리는 인생의 그림을 모두 검게 칠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해 누구를 탓하지도 않는다. 그저 듣는 우리를 대변하는 자신의 심정만 담담히 읊조릴 뿐이다.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이라는 이 노래의 후렴구가 신세한탄이 아닌 위로로 다가오는 이유다.


(2016.10.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