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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마 밑 May 23. 2018

늦은 답장은 고백이다

김동률의 <답장>을 듣고

답장

-김동률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나 알다시피 좀 많이 느려서
몇 번이나 읽어도
난 믿어지지 않았나 봐
답을 알 수 없던 질문들
다음날에 많이 웃겨줘야지
난 그랬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넌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널 알아주지 못하고
더 실없이 굴던 내 모습
얼마나 바보 같았을까
내일 맛있는 거 먹자고 혹
영화라도 볼까 말하던 내가
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네 앞에 선다면
하고 싶은 말 너무나 많지만
그냥 먼저 널 꼭 안아 보면 안될까
잠시만이라도
나 그때로
다시 돌아갈 기회가 된다면
그때보다는 잘할 수 있을까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은데
나 아무래도 내일 쓸까 봐 또 미룰래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
지금 보내더라도 어차피
달라질 건 없다고
넌 이미 모두 잊었다고
읽지도 않을 수 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모른 척했던 시간이 넘 길었어
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널 볼 수 있대도
어쩌면 나는 그대로일지 몰라
사실 아직도 그 답은 잘 모르겠어
미안하단 말은 안 할래
그렇게 되면 끝나버릴까 봐
그러고 나면 똑같아질까 봐
혹시 내일이면 알게 될 수 있을까
오늘도 미루고 내일도 미루겠지만
널 사랑해
이것만으론 안 될지 몰라도
이제 와서 다 소용없더라도
이것밖에 난 하고픈 말이 없는데
사랑해 너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답장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심의 결과든 고민의 결과든 반응을 기다리는 상대방에겐 답장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늦은 답장'은 존재할 수 없다. 늦었다고 판단하는 기간의 정도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늦었다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답장이다. 표현되지 않는 것은 추정된다. 상대방은 기다리지 않는다.


화자는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하다고 운을 뗀다. 자신이 "좀 많이 느려서" 그랬다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한다. 하지만 이내 "미안하단 말은 안 할래"라며 사과를 거둔다. 그리고 "사랑해 너를"이라고 말하며 노래를 맺는다. 화자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듯하다.


화자는 "소용없더라도" 늦은 답장을 적는다. 여전히 생각은 이곳저곳에 난삽하게 흩뿌려져 있고 표현 역시 그만큼 혼란스럽지만 이제는 쌓여버린 언어를 토해낼 수밖에 없다. 늦은 답장이 고백이 되는 순간이다. 화자는 "이것밖에 난 하고픈 말이 없"지만 결국 그것이 사랑 고백임을 끝내 숨기지 못한다.


고백은 솔직하다.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자신이 변했는지 또는 변할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다. 서툰 약속보단 솔직한 한계를 말하는 게 더 낫다는 걸 알만큼 서로를 겪었다. "그냥 먼저 널 꼭 안아보면 안 될까"란 표현에선 그리움과 체념이 동시에 묻어난다. 늦은 답장의 고백은 슬프지만 힘이 없다.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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