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10
한 번 들으면 잘 까먹기 힘든 이름이었다. 어감도 예쁘고 의미도 독특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돌림자를 빼고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당신은 그 이름이 좋았다.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예쁜 이름은 처음 듣는다며 칭찬해주었고 이름이 예쁜만큼 당신도 예쁘다며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은 특별한 이름이 당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들에 이름을 큼지막하게 적어 일부러 누군가의 눈에 띄길 원했고 sns 아이디도 본명으로 등록할 만큼 이름에 대한 애착이 넘쳤다.
가끔 당신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컴퓨터를 켜 당신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곤 했는데 몇 명 검색되지 않는 점이 좋았다. 스스로가 세상에 몇 되지 않은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항상 상위에 당신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나와 있다는 것도 더더욱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여느 날 옆자리 친구가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당신의 이름과 똑같은 유명인이 있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심장이 요동쳤다. 사진 속 인물은 누가 봐도 예뻤고 인기 있어 보였다. 실제로 얼굴이 예쁜 걸로 유명하다고 했다.
검색을 하지 않은 틈에 이런 예쁜 동명이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아니 알았다고 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인물의 유명세는 점점 높아져 갔고 당신은 조금씩 소지품의 이름 크기를 줄였다.
학교 영화부에서 시나리오 모집을 할 때였다. 당신은 영화부 선생님의 등쌀로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했다. 제출률이 적어 각 반에 한 명씩 선생님이 부추기는 형태였다. 시나리오 용어를 몰라서 한번 거절했지만 선생님이 수정하면 되니 내용만 좋으면 된다고 했다.
예전에 적어 놓았던 글이 하나 생각나기는 했다. 당신은 곧장 집에 와서 서랍을 뒤져 노트를 찾아냈다. 처음 피아노를 쳤을 때 했던 생각들을 짧게 적어놓은 글이었다.
이야기를 구성하려니 주인공의 이름이 필요했다. 당신의 이야기이니 당신의 이름을 적을까 하다가 그랬다간 또 유명인과 비교당할 것 같아 관두었다. 아무와도 비교당하지 않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누가 들어도 예쁜 이름이 필요했다. 하루를 꼬박 걸려 이름을 지었다. 완성된 이야기는 선생님의 마음에 들어 영화로 제작되었고, 청소년 영화제에서 시나리오 대상을 받는 등 좋은 성적을 내었다.
오래 고민 한 이름이 좋은 성적을 내었다고 생각한 당신은 그 이름에 당신을 투영했다. 생활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본명을 썼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영화 주인공 이름을 대신 썼다. 숨을 곳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 이름은 당신이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이 되어서도 당신의 다른 세상 생활을 대신해주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팝업스토어를 들렀을 때 커다란 현수막에서 당신의 이름을 만났다. 동명이인의 작가 북 토크가 진행된다는 안내 현수막이었다. 꽤 충격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당신은 같은 이름의 사람이 저런 과격한 책을 쓴다는 것에 놀라 잠깐 멈춰 섰으나 이내 태연하게 구경했다. 퇴근을 한 당신의 이름은 그 작가와 동명이인이 아닌 당신이 쓴 영화 주인공의 이름이니까.
오랜만에 포털 사이트에 당신은 본명을 검색했다. 수많은 동명이인이 나왔다. 음악가 작가 변호사 배우 감독 디자이너.. 다들 대단한 사람뿐이었다. 당신은 당신이 만든 이름을 검색했다. 아직 아무도 검색되지 않았다. 안도했다. 당신이 어떤 업적을 남길 때에는 본명이 아닌 이 이름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무와도 비교당하지 않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누가 들어도 예쁜 이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