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속의 당신

당신의 이야기 #11

by 한이아

나름 대학 생활을 큰 문제 없이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취업이 되지 않았다.

같이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인이 되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더이상 같이 웃고 떠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당신은 직장인이 아니라 회사에 치이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등쌀에 치이고 주변의 눈총에 치이느라 웃고 떠들 기분도 나지 않았다.


하루는 당신의 어머니가 국비 지원 디자인 학원을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학원만 다니면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이나 실전에 대비한 준비를 해준다고 했다. 집에서 밥이나 축내지 말고 6개월 동안 학원에서 잘 공부해서 얼른 돈이나 벌어오라고 했다. 당신은 신경질적으로 알았다고 대답한 후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인스타를 켜서 국비지원 디자인 학원을 검색했다.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다니기만 하면 취업이 된다는데 마음이 솔깃했다.


당신과 어머니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학원을 정하고 등록했다. 필요한 서류들은 학원에서 대부분 도와주었다. 등록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당신의 어머니는 기어코 따라와 직접 가르치지도 않는 상담 선생님의 손을 연신 잡으며 당신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


당신은 약속이 생겼다며 둘러대고 어머니를 집으로 돌려보낸 후 조금 걸었다. 높은 빌딩과 많은 차가 보였다. 집과는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대도시였다. 거리에 많은 사람이 모두 바삐 걸어 다니는 걸 보며 당신은 지금 여기서 이상한 춤을 추어도 아무도 관심 없이 지나칠 것 같은 차가움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그 차가움을 가지고 싶기도 했다. 남극에 살지만 추위를 타는 펭귄이 된 기분이었다.


걷다가 홀린듯이 서점에 들어갔다. 베스트셀러 칸에서 한 시집을 꺼내 들었다. 한때는 세상을 뒤흔드는 거물급의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졸업과 동시에 손에서 놓은지도 오래였다. 동기 누구는 인기 작가가 되어 잘 먹고 잘 산다던데 너도 소설이나 쓰지 그랬냐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또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당신은 고개를 저으며 시집을 내려놓았다.


주변에 한가로운 카페란 없었다. 당신은 최대한 사람들이 귀찮아서 올라오지 않을 것 같은 높은 층에 있는 카페에 들어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를 꺼내들어 아무 글로 채웠다. 머릿속에 있는 아무 감정들을 다 쏟아내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모든 걱정거리를 다 해치우고 싶었다.


쌀쌀한 날씨 탓에 어둠이 금방 찾아왔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전화에 당신은 식어버린 커피를 반납하고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제일 마지막 순번에 서서 버스가 오는 것을 기다리며 친구들의 단톡방을 열었다. 버스는 금방 도착했고 친구들의 대화도 시작되었다. 매일 하는 회사 욕이 지겹지도 않은지 오늘도 똑같은 내용이었다. 당신은 국비 지원 디자인 학원에 등록했다고 소식을 던진 후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넣었다.


오랜만에 멀리 나와서인지 피곤함에 졸다 눈을 떴다. 버스는 한강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잠결에 바깥의 풍경이 아스라이 예뻤다. 늦은 시간의 버스는 어둑한 불빛으로 탑승객들의 수면을 도와주었다. 강에 비치는 불빛을 보다가 창문에 비치는 당신의 얼굴을 발견했다. 창문 속 얼굴에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다리의 길이만큼 한참을 반짝거렸다. 당신은 그것이 당신의 어두운 내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빛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조그맣지만 잃지 않고 계속해서 빛을 내고 있었다.


서점에서 내려 놓았다 다시 집어 든 시집을 꺼내어 지금을 기록했다. 주변이 어두워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당신의 얼굴과 그 속에서 빛나는 잃지 않을 꿈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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