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속의 당신

당신의 이야기 #13

by 한이아

당신은 어떻게든 자취를 하고 싶었다. 유튜브로 본 각양각색의 자취 인테리어 영상이 생각을 부추겼다. 본가의 한물간 체리 몰딩과 이름 모를 꽃이 가득한 벽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온전히 당신의 취향으로 꾸민 집에서 이케아에서 봐 둔 무드등을 하나 놓으면 얼마나 멋진 곳이 될까. 친구들이 매일 밤 자고 간다고 조르면 어떡하지? 못 이기는 척 치킨을 사 오라고 할까?



집을 구하는 어플을 켜 가까운 지하철역 근처를 검색했다. 가능한 보증금과 낼 수 있는 월세를 적어 검색했다. 리스트 중 사진이 괜찮은 몇 곳을 살펴보니 역에서 걸음으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15분이면 산책 겸 걸어 다니거나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플에 올라온 사진을 다 믿진 못하지만, 어차피 당신의 취향에 맞는 벽지와 타일, 전구로 바꿀 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검색된 리스트 중 크기가 제일 큰 집을 골라 부동산에 전화했다. 내일 아침 11시까지 부동산으로 오라고 했다. 당신은 곧 꿈이 실현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부동산에 도착하기 전 당신은 집 고르는 고수처럼 보이기 위해 인터넷에서 봐 둔 자취 집 구할 때 체크해야 할 사항을 꼼꼼히 되뇌었다. 먼저 자취를 하는 친구들에게 여러 팁도 받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젊은 여직원이 싹싹하게 반겼다. 기다리고 있었다며 집주인에게 연락해놓았으니 바로 가자고 했다. 부동산을 구경할 새도 없이 직원을 따라 작은 차에 탔다. 차는 여러 번 골목을 꺾어 보여줄 집에 도착했다. 상가가 별로 보이지 않는 주택가였다. 덩굴로 숨겨져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문 앞에서 직원은 주인에게 전화했다. 곧 주인이 내려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맞이했다.



친절한 안내로 보게 된 집의 상태는 어플에서 봤던 사진과는 달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달랐다. 당신이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직원이 옆에서 열심히 설명해댔다. 이 가격에 이 넓이가 나오는 건 기적이라며 조금만 수리하면 정말 예뻐질 거고 주변이 다 주택가라 시끄러울 일이 없고 마을버스 정류장이 가까워 교통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두 블록만 가면 카페거리가 있어 문화생활도 충족되고 마트가 2개나 있어 생활하기엔 최적이라고 했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집주인이 같은 건물에 사니 바로 연락하면 되고 주인이 드나드는 문과 당신이 드나드는 문이 달라 신경 쓰일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방이 2개나 되는 집에 세탁기와 에어컨 옵션이 있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며 어제 다른 고객이 계약하려고 했던 걸 조금 기다리라고 한 뒤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주인이 당신 같은 참한 세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손을 꼭 잡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은 이사 트럭에 앉아 있었다. 도착해 짐을 내리는 순간까지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기사님이 마지막 짐을 내리고 잘 살라고 떠났다. 세탁기와 에어컨을 제외하면 텅 빈 공간에 당신 혼자 앉아 있었다. 짐에서 규조토 발판을 꺼내어 화장실 앞에 두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박스에서 매트를 꺼내 위에 누웠다. 유튜브에 쓰여 있었던 추천 가구 사이트를 접속했다. 깔끔하고 예쁜 가구들과 그 가구들을 놓은 인테리어 참고 사진들이 많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사비용과 관리비, 각종 세금을 빼고 보니 남는 돈이 없었다. 장바구니에 넣어놓은 목록을 하나씩 삭제하고 나니 남은 것은 포기할 수 없었던 바 테이블 하나였다. 테이블이라도 저렴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테이블이 도착했다. 집을 처음 봤을 때처럼 테이블도 사이트에 있던 사진과 달랐다. 꼼꼼히 봤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달랐다. 대신 여자 혼자 조립하기 어렵다는 리뷰와는 달리 조립은 쉬웠다. 어울리는 의자 없이 놓인 테이블이 허전했다. 의자를 사려면 다음 달 월급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놓지 못한 세제와 청소기가 먼저이니 다다음 달이 될 수도 있었다. 옵션에 없었던 냉장고를 사야 하니 다다다음 달이 될 수도 있었다. 이사 오기 전 생각했던 벽지는? 타일은? 조명은? 테이블과 어울리는 예쁜 의자를 사기 위해 여러 달을 기다려야 했다. 공간을 당신의 취향으로 꾸미기 위해선 기약 없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예쁜 인테리어 브이로그는 왜 항상 일부분만 보여주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날 잠들기 전 이케아에서 봐 둔 무드등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1만 원 남짓한 무드등이 당신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바꿔주길 바랐다.

매거진의 이전글봄 속의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