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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Dec 01. 2021

감정에 게으른

한 권을 채우자

뭐든 혼자 감내할 수 있어야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히 혼자 인내할 수 있는.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으니까 감내하려 했다. 사적인 일을 공적으로 끌어오지 않았으며 조금 싫은 소릴 듣더라도 안 되는 건 태연하게 넘기고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생겼든 바깥으로 보이는 모습은 항상 똑같이 밝게 유지하려 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걸 좋아하니까. 내가 긍정적으로 있어야 내 주변도 긍정적이게 되는 거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건 쉬웠다. 아무 말도 안 하면 되었다. 목은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입을 열지 않으면 될 터였다. 말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했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나의 어른스러움에 기대어서 좋았다고 했다. 나는 그저 입을 열지 않고 입꼬리를 당기고 있을 뿐이었는데.


외적으로 어른처럼 보이는 건 좋았다. 나이에 맞게 성숙한 이미지도 챙길 수 있었고 사람들이 잘 따랐다. 하지만 속에서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이 곪아있었다. 감정이 곪아 부정적이 되면 그걸 또 참고 그게 또 곪는 게 반복됐다. 입꼬리가 여전히 당겨 있으니 그걸 알아채 줄 이도 만무했다. 어른이 되려면 감내해야 한다고 해서 그저 멍청하게 참기만 했을 뿐 어떻게 그 감정들을 소화하는지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자문을 구해 봤지만 효율적인 방법이 적혀 있진 않았다. 그도 그럴게 아직 어른이 아닌 이 가 어른인 척 흉내만 낸 것이니까. 진짜 어른이 쓴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을 조금 달리 하자 싶었다. 어차피 난 어른이 되고 싶어도 아직 철이 안 들어 될 수 없으니 인정하고 내 성질에 맞게 살자. 심장의 감정들이 곪기 전에 목을 통해서 입 밖으로 내뱉자. 대신 조금 게으르게 뱉자. 딱 한 번 더 생각하고 딱 한 번 더 고민하자. 나이가 먹어가면 딱 두 번 더 생각하고 딱 두 번 더 고민하자. 그렇게 횟수를 늘려보자. 그리고 감정이 게으른 대신에 표현엔 게으르지 말자. 좋다는 감정이 곪기 전에 좋다고 표현하고 싫다는 감정이 곪기 전에 싫다고 표현하자. 


잘 감내하는 사람도 어른이겠지만 잘 표현하는 사람도 어른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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