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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Dec 02. 2021

머리만 숨기면

한 권을 채우자

댕댕이는 귀엽다. 이건 사실이고 팩트다.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강아지의 매력은 숨바꼭질을 할 때 명실히 드러난다. 커튼 뒤에 머리만 숨기고 신나 하는 강아지 꼬리를 보고 있자면 당장 달려가서 으이잇 하며 몸을 부비고 싶어 진다. 머리만 숨으면 다 숨은 줄 아는 멍청한 귀여움은 지금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가끔 아무도 나를 찾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고된 일로 몸이 너무 무거울 때. 입을 여는 행동 자체가 너무 무거울 때. 메세지 답장을 보낼 손가락 힘 하나 없을 때. 아무에게도 마음 쓰고 싶지 않을 때. 제발 오늘 하루는 아무도 나를 찾지 말고 넘어가 주었으면.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의 몸이라 그럴 수가 없다. 간단한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 무거운 몸을 자리에 놓는다. 꾸역꾸역 노트북을 켜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켜 놓는다. 그리고 노트북 뒤에 머리만 숨기고 일에 집중한다. 15인치 밖에 안 되는 노트북 화면에 내 거대한 몸집을 숨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머리만 숨으면 나를 다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왜 그렇게 고개 숙이고 일 해요? 목 안 아파요?" "멍청한데 귀여워 보이려고요." 숨고 싶은 마음을 감지한 눈치 빠른 D가 잠시 후 초코를 내민다. "선생님 하나도 안 귀엽고요, 꼬리 다 보여요." "칫."


꼬리가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우리 댕댕이 어디 있나- 하며 장단을 맞춰주는 강아지 집사처럼. 없는 꼬리가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자, 그럼. 내일은 제가 술래 할게요. 엄청 다들 찾아가서 괴롭힐 테니까 숨을 생각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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