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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Nov 30. 2021

신분증 없는데요

한 권을 채우자

다른 걸 다 놓고 다녀도 절대 놓고 다니지 않는 핸드폰. 든든한 삼성 페이까지 있으니 배터리만 있다면 난 어디든 떠날 수 있어!인데 한 번씩 집에 들어가는 길이면 배터리가 있어도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 네?" "신분증이요. 없어요? "네.." 


집 근처 자주 사담을 나누었던 편의점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알아서 괜찮은데 꼭 이렇게 한 번씩 조금 먼 곳에서 맥주를 살라 치면 벽을 만나는 거다. 신나서 집어 들었던 알록달록 라벨의 맥주 4캔을 다시 쇼케이스에 넣는다. 속상하다. 진짜 오랜만에 마시는 건데. 곰표 꼭 마셔보고 싶었는데.


그런 일을 가까운 시일에 두 번 정도 겪고 집을 이 잡듯 뒤져 신분증을 찾아냈다. 가방 작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모바일 화면은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편의점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라 더 속상했다. 예전처럼 지갑을 들고 다녔으면 못 살 일은 없었을 텐데. 가방 속 신분증은 이리저리 다른 카페 쿠폰들과 뒹굴겠지. 그렇다고 신분증 하나를 위해 지갑을 살 수도 없고. 


다음날 맥주 4캔을 당당하게 계산대에 올려놓고 신분증을 내밀었다. 나를 쳐다보는 파트타임분의 눈이 물음표로 변했다. 누가 봐도 성인인데 왜 신분증을 내미냐는 표정이었다. "아, 그, 저도 아는데요. 저번에 왔을 때 신분증 검사하셔 가지고.. 요.. 아, 그쵸? 신분증이 좀 오래돼 보이죠? 하하. 맞아요. 발행 연도가.. 어머, 진짜 오래됐네." "진짜 본인 거세요?" "네?" "동안이셔서요." 센스 있는 착한 친구군. 잘해줘야겠다.


드디어 마셔보고 싶었던 곰표 맥주를 마시며 그래. 이제까지 내가 동안이어서 신분증 검사를 했던 거야. 알콜이 더해진 기분이 성층권을 뚫고 열권까지 오를 기세였다. 오로라처럼 찬란한 기분을 맛보고 있는데 대기시간이 지난 핸드폰 화면이 꺼지며 얼굴을 비췄다. ..오늘 기분은 오존층까지만 갈까? 사람이 겸손할 줄도 알고 그래야 미덕인 거야. 맞지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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