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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Nov 28. 2021

바 테이블

한 권을 채우자

"왜 언니가 데려가는 데는 다 바 테이블이에요?" 맛집이 있다고 데려가니 Y가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만났던 카페도 그랬고 저저번에 만났던 위스키 바도 그랬고 오늘 만난 밥집도 바 테이블이다. 그 외에도 주로 마음이 들었던 가게는 다 바 테이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게. 나 왜 바 테이블 좋아하지?"


회사에서 잠시 딴청을 피우다 홍대 소식이 들어 있는 무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티스트 인터뷰와 책방 소식도 있고 홍대 곳곳을 비춘 사진들이 있었다. 마지막 장 즈음에 한 가게 인터뷰를 봤다. 무려 사장님이 8명! 8명의 술 취향이 다 달라 다양하게 추천받을 수 있다고. 퇴근하고 그날 시간이 되는 사장님이 돌아가며 운영하신단다. 어머, 너무 신기하잖아? 저긴 꼭 가야 해! 퇴근까지 한 시간 반. 가게는 걸어가기에 충분한 거리에 있었다.


잡지에서 봤던 간판이 눈앞에 있었다. 소싯적 밴드 공연을 보러 다닌 사람이라면 다 아는 그 길목이었다. 오픈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해서 가게 안은 아무도 없었다. 낮은 테이블을 두고 자연스레 높은 바 테이블에 앉았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공중에 궁둥이만 걸치고 앉은 느낌이 둥둥했다. 안경을 낀 사장님이 살짝 낯을 가리며 맞이해주었다. 과연 소문으로 들은 만큼 주종이 많았다. 맥주 양주 와인.. 이까지 왔으면 평소 잘 못 마시는 Korean sool을 마셔봐야지. 버섯과 자몽맛이 난다는 궁금한 한국 술을 주문했다. 그리고 안주로는 바나나 브륄레. 


"저, 잡지 보고 찾아왔어요! 사장님이 여덟 분 이시라면서요?" 술 조금 들어갔다고 금방 혀가 풀려 사장님께 자랑했다. 사장님은 안경 너머로는 살짝 당황스러워하셨지만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대화에 참여해주셨다.


"퇴근하고 장사하면 너무 힘들지 않아요? 대단하세요. 정말." "하하 그렇죠. 그래도 8명이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한국 술 좋아하시나 봐요." "아, 평소에 못 보던 거라 신기해서요." "그럼 고구마 좋아하세요?" "네! 구황작물 좋아합니다!" 눈앞에 고구마 주가 생겼다. 그렇구나. 나 계속 마셔야 하는구나. 사장님의 사랑이 참 따스했다.


사랑으로 골라주신 고구마 주는 맛있었다. 사장님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를 사이에 두고 퇴근하고 바쁜 이와 퇴근하고 여유로운 이가 있었다. 바쁜 이와 여유로운 이는 가끔 대화했고 가끔 웃었으며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적당히 편안한 거리감. 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둔 적당히 긴장한 거리감. 바 테이블은 손님과의 적정한 거리감을 고민해서 만든 테이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까지는 친해질 수 있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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