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을 채우자
항상 손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었기에 네일숍은 먼 이야기였다. 손톱은 항상 바짝 깎여있었고 그 단정함이 마음에 들었다. 손톱은 단정한데비해 손은 항상 거칠어 보였는데 손버릇이 나빴다. 뜯는 버릇을 고치기 힘들었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질머리가 뭐라도 꼼지락 거리게 했고 그게 손이었다. 영화 '썸써커(Thumbsucker 2005)'를 보고 나선 유아기적 버릇을 고치지 못한 걸까 잠깐 의심했지만 나에겐 손 뜯기를 통해서 얻어지는 불안감 해소도 안정감도 없단 걸 알았다.
향수를 좋아하고 립스틱을 좋아하는 룸메가 권했다. "언니 같이 네일 받으러 갈래요?" 손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지 1년 정도가 되었다. "네일? 나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얼만데?" 손가락이 길고 얇은데 손톱이 아깝다고 했다. 이런 손에 네일을 하면 예쁠 거라고. 결정타는 네일비가 아까워서 손 뜯는 버릇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손톱 위에 두껍게 쌓는 거라 뜯기도 힘들 거라고.
좋은 날 살랑이며 걷다가 샵에 도착했다. 환하고 화려한 조명이 눈부시게 놓여있었다. 벽에는 금색 선반에 화려한 네일 폴리쉬가 놓여 있었다. ㄴ자의 긴 대리석 테이블에 반짝이는 네일 선생님이 줄지어 한가득이었다. 반짝이는 손님도 한가득 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여자가 된 기분이야." 룸메가 웃었다.
차례가 되어 쭈볏이며 룸메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앳되 보이는 선생님이 손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고객님. 손을 하도 뜯어서 손톱이 다 변형됐어요. 예쁜 손인데 이게 뭐예요. 속상하게." 선생님의 손톱이 길고 예뻤다. 누군가에게 낱낱이 관찰당하니 손으로 뜯은 자국이 군데군데 있는 손톱과 손가락을 웅크리고 싶었다. 선생님은 나보다 속상해하며 컬러차트를 가지고 왔다. 이왕 받기로 한 거 절대 내가 선택하지 않을 법한 화려한 색을 골랐다. "이건 손가락당 8천 원이에요." "아하. 다른 걸로 할게요."
네일을 받는 동안 룸메와 떠들었고 선생님과 떠들었다. 모든 단계가 익숙한 룸메와 모든 단계가 어색한 내가 어떻게 룸메이트를 하게 되었는지로 떠들다가 어느 세상에나 있다는 진상고객 이야기로 떠들었다. 머릿속에 네일아트는 멀티가 가능한 사람이 하는 거구나 싶었다. 나는 가만히 받는 입장인데도 대답을 떠뜸거렸다.
유지기간이 2주 정도 된다고 들었을 때는 되게 짧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자 불편했다. 밀대와 가위로 자른 큐티클은 자잘한 상처가 나서 물이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고 손가락을 넘은 손톱은 타자를 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 손톱으로 일을 하지? 모든, 네일을 주기적으로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 존경스러웠다. 룸메에게 물으니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게 여자라는 말을 돌려줬다. 머리부터 발까지 중 가장 화려한 색을 가진 손톱을 쳐다봤다. 손만 딱 떼놓고 보면 예뻤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화려한 손톱을 가져보겠어. 일주일을 끙끙대며 참았고 덕분에 손 뜯는 버릇도 강제로 참아지긴 했다.
더 길어진 손톱이 불편해 손톱깎이를 댔다가 우수수 갈라지고 떨어지는 비싼 네일을 보며 해방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불안감 해소와 안정감이 손 뜯기에서 온다고 인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보이는 거스러미를 모두 없애고 싶었다. 금단현상을 느끼며 룸메와 네일을 받기 전 사두었던 네일 스티커를 뜯었다. 이거라면 큐티클 상처도 없고 내 맘대로 뗄 수 있고 손톱깎이도 쓸 수 있겠지. 떠뜸떠뜸 왼손 손톱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였더니 그럴싸해졌다. "오, 나 의외로 손재주 있을지도?" 스티커를 붙이기만 하는 건데도 오른손 손톱은 망했다. 떼 버렸다.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이후로 네일 스티커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되도록 화려한 색상으로 고른다. 손 뜯는 버릇을 완벽히 고치진 못했지만 화려한 색상의 네일이 경고등처럼 느껴져서 뜯다가 멈춰진다. 스티커의 두께감 때문에 손톱이 두꺼워져 못 뜯기도 하고. 여전히 왼손에만 붙여있다. 그래선지 버릇이 고쳐지는 효과는 반이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반이면 고쳐지기 시작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