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페퍼가 우리의 가족이 된 지 고작 일주일정도 지났을까?
매번 반갑게 다가가도 피하는 토니에 아랑곳 않고, 그저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고 놀아달라며
나의 발가락을 살짝씩 깨물던 페퍼의 건강 신호등에 노란불이 켜졌다.
잘 놀고먹는 것 같다가도, 페퍼는 부엌 구석에서 한 없이 짙은 검정에 가깝던 물에 가까운 점성의 설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더없이 까만 흑빛의 설사였다.
하양이를 돌봐주던 2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병치레가 없었다 보니, 당시의 우리에게 강아지가 걸리는
질병도 증상도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고, 그저 으레 어린 아기들이 겪는 자잘한 배탈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가족은 2-3일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던 페퍼에 뒤늦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엄마! 페퍼가 밥은 잘 먹는데, 계속 설사를 해. 이거 병원 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페퍼를 품에 안고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토니가 다니던 병원의 휴무로 인해 하양이가 다니던 이마트 2층에 있던 동물병원을 방문했고, 페퍼의 증상과 변 상태를 의사 선생님에게 말하자 난색을 하시더니 나에게 되물으셨다.
"혹시 집에 페퍼 말고 다른 강아지도 있으신가요?"
그 순간 뒷목을 쓸고 지나가던 서늘함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당황한 엄마와 나는 이제 5개월을 지나던 토니의 존재를 알렸고, 걱정되는 마음에 토니는 설사 증상도 없고 잘 놀고먹고 잔다고 말하며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의사 선생님께 되물었다.
"선생님, 페퍼 많이 안 좋은 거예요...?"
잠시 멈칫하던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내 앞서 페퍼의 항문을 통해 채취한 분변 검사 결과를 보여주시며
차분히 설명을 시작하셨다.
"자 여기 줄 보이시죠 보호자분. 이게 파보, 이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양성 반응이 나온 결과인데요. 이 바이러스들의 경우에 어린 강아지가, 그것도 예방접종도 마치지 않은 경우라면 생존 확률이 30%도 되지 않는데 -"
생존확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의사 선생님의 말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 순간의 엄마와 내가 느끼고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죽음'
바보같이 흘려보낸 지난 사흘의 시간이 페퍼에게는 죽음의 디데이가 흘러가던 순간이었다는 걸.
토니에게 겪지 않아도 되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고통을 안겨주는 순간이었다는 걸.
길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죽음이라는 단어의 공포감에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는 둑이 터진 것처럼 그저 엉엉 울었던 것 같다.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무서워서.
대신 아파줄 수도 시간을 되돌려줄 수도 없는 그저 바보 같은 나에게 와준 선물 같은 아가들을
영영 잃어버릴까 봐, 준비도 없이 이별이 찾아올까 봐...
길어진 설사로 급격히 컨디션이 나빠진 페퍼를 입원시키고 돌아오며 그저 빌었다.
페퍼에게 기적이 찾아오기를, 그리고 토니 또한 무사하기를.
하지만 무지의 결과는 가혹했고, 또 가혹했다.
그렇게 페퍼는 치료를 시작한 지 고작 3일 만에 훌쩍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10장 남짓한 사진과 동영상에 짧았던 100여 일의 삶을 담은 채 말이다.
'더 많이 안아줄걸, 더 좋은 곳에 많이 데려가볼걸.'
늦은 후회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꽂히던, 페퍼가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난 매서운 겨울의 어느 날,
토니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