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내가 최선이면 좋겠다.

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by 타이타

6. 차라리 내가 아플 수만 있다면.


페퍼를 떠나보낸 아픔과 죄책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토니가 하루종일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호사다마라더니 다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통이 연달아 닥치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나는 달렸다. 토니를 살리기 위해서.




동물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꾹 닫힌 창문 안으로 시린 겨울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온몸으로 한기가 돌았다.

그토록 활발하게 뛰어놀았던 토니가 품에 안겨서 축 늘어진 모습을 보면서,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내가 이 모든 일들을 자초한 것만 같아서, 네가 그 대가를 작은 몸으로 받아내는 것 같아서.


도저히 페퍼가 마지막을 보냈던 병원으로 갈 자신이 없었던 비겁한 마음을 눈물과 함께 삼켜내었다.

페퍼가 다녔던 병원으로 가면, 토니를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왜 나는 방치했냐고 너희들은 더 아파봐야 한다며, 페퍼가 토니를 데려갈까 봐.


페퍼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만들어낸 바보 같은 망상이었겠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토니마저 잃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에 반쯤 미쳐있었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씩 토니의 증상과 병원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무섭고 두려워서.


하루 온종일 토니를 살리고 싶은 간절함이 담긴 내 노력이 통했던 걸까?


지인을 통해 동네에서 꽤 유명한 한 동물병원을 소개받게 되었고,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것처럼 간절함을

담아 병원의 전화번호를 눌러 통화 연결을 시도했다. 제발 문이 아직 닫히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짧은 연결음을 끝으로 지긋이 나이 든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다급하게 증상을 설명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묵묵하게 들어주시던 원장님께서는 아직 문 열려 있으니 토니를 데리고 와보라는 말을 건네주셨다.


그렇게 토니가, 그리고 토니 아가들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수의사님을 만나

오둥이의 집사로서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선 우리를 보신 원장님께서는, 앞쪽에 있는 체중계에 토니를 올려 체중을 확인하신 뒤

진료실로 안내해 주셨고 증상을 하나하나 적어나가시면서 토니의 상태를 체크해 나가셨다.


몇 가지 간단한 검사 후, 작은 바이러스 키트를 보여주시며 페퍼가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토니에게도 옮겨졌음을 담담하게 안내해 주셨고, 침착하게 치료과정을 안내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수도꼭지가 고장이 난 것처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날카로운 죄책감에 쉴 새 없이 베여 나가는, 시린 겨울바람보다도 더 매서운 죄책감과 공포심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울지 마세요, 보호자분. 토니 살릴 수 있어요. 보호자님이 버티셔야 합니다."


원장님의 차분한 음성에서 그 간의 경험에서 터득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여온 수많은 경험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침착함과 단단함이 얼마나 큰 신뢰감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를 그 짧은 한 마디에서 모두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눈물을 그친 나를 인자하게 바라보시며, 원장님께서는 치료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이어가셨다.


"토니가 이제 5개월이 지나가는 중이지만, 5차 예방접종이 우선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면역은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선 전해질 균형을 맞추면서 혈청치료를 같이 해보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토니를 살리기 위한 10일간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원장님의 치료 과정은 생각보다 정말 간단했다. 이토록 낮은 생존 확률을 가진 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원장님께서는 알기 쉽게 일자별 치료 과정을 안내해 주셨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토니의 병치레를 다하기

시작했다. 1차 치료로 설사로 인해 불균형한 전해질 균형을 맞추고, 2차로 건장한 대형견에게서 뽑은 피로

혈청을 만들어서 토니에게 주입하게 되면 좀 더 면역력이 살아나면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었다.


1, 2차의 치료 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토니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수액치료실에 토니를 두고 우선 하루 지켜보자는 말에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이 모습이 토니가 나를, 내가 토니를 보는 마지막이 될까 봐.

토니가 홀연히 페퍼의 곁으로 떠날까 봐 말이다.


쌔액쌔액 숨을 내쉬며 작고 가녀린 발에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을 보면서 토니에게 속삭였다.

내가 버텨야, 내가 더 단단하게 서 있어야 너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토니야. 걱정하지 마. 잘 이겨낼 거야. 이깟 바이러스 우리 토니한테 절대 못 이길 테니까."


어쩌면 나에게 되뇌는 말이었던 것 같다.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꼭 이겨내고 말 것이라고.


너만은 반드시 내가 지켜낼 것이라고. 더 나은 날들을 꼭 보여줄 거라고.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일의 기간 동안 토니는 수액과 혈청 치료를 병행하며 차츰차츰

예전의 활력을 되찾아가기 시작했고, 생기가 도는 눈망울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홀쭉하던 배가 통통해졌고, 푸석하던 털에 윤기가 돌면서 설사가 멎어갔다.

그렇게 토니가 입원한 지 꼬박 10일 만에, 토니는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우리 품으로 돌아와 주었다.

건강하고 건강해진, 더 단단해진 집사의 곁에서 남은 생을 함께하기 위해서 말이다.


고마워 토니야.

누나가 꼭 보여줄게, 그리고 지켜줄게.


남은 너의 생이 눈부시게 행복한 순간들로만 가득할 수 있도록

내 모든 것을 너에게 쏟겠다고 다짐했던 어리고 어리숙했던 초보 집사가 네 덕분에 지금 이 순간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너를, 아내를, 아가들을 지켜내는 듬직한 집사가 될 수 있었어.


그렇게 아프고 길었던 겨울의 순간이 지나고,

토니는 천방지축 얼렁뚱땅 사고뭉치 애물단지 1살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토니의 '자기'가 될 사랑둥이의 합류로 나는 그렇게 2마리의 집사로 레벨업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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