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내가 최선이면 좋겠다.

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by 타이타

8. 너의 이름은


다시 한번 토니에게 짝꿍을 만들어주기로 결심하면서, 우리 가족은 전에 있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야말로 토니에게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무턱대고 찾아온 친구에 토니가 전처럼 놀라지 않도록,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사전 건강검진을 통해 병의 여부는 이미 다 확인을 마쳤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원장님의 말을 끝으로,

건물 2층에서 미용 중이라는 사진 속 주인공을 보기 위해서 조심스레 계단을 밟고 위층으로 향했다.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우리 가족의 품으로 들어오는 첫 순간의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그렇게 너를 만나는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우연인 듯 운명인듯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지저분하게 엉켜있던 털 고르기를 마치고 하얀색 바닥에서 여기저기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작은 솜뭉치가 우리 가족의 눈에 들어왔다. 따로 소개를 받지 않아도 우리는 한눈에 저 솜뭉치가

사진 속 존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임에도 마냥 작은 꼬리를 흔들며 나의 발치에서 팔짝거리는 존재를 보면서,

조심스레 몸을 낮추어 품에 안긴 토니에게 작은 솜뭉치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기 시작했다.

토니에게 허락을 구하듯이 조심스럽게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오는 솜뭉치와의 첫 만남이

지금의 오둥이라는 대가족을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건,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우리 중

그 누구도 몰랐을 터였다.




그 뒤로는 정말 신기하게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걱정을 안고 첫 만남을 가진 토니와 작은 솜뭉치는 생각보다 큰 트러블 없이 서로의 존재를 탐색했고,

그렇게 두어 번의 만남 끝에 사진 속 솜뭉치는 원장님의 손을 거쳐 온연히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서

토니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아내가 될 줄은... 몰랐던) 우리 집의 막둥이로서 작은 존재를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토니의 어린 시절을 지나온 2년 차 집사로서 제법 능숙하게 솜뭉치의 적응을 위해 사온 용품들을 꺼내두기

시작했다. 거실 한편에 솜뭉치가 잠을 자는 공간을 만들고, 토니의 물그릇 옆에 작은 물그릇을 배치하고,

아직은 배변훈련이 되지 않아 서툰 솜뭉치를 위해 여기저기 작은 배변패드를 깔아 두고 나니 거실이 어느새

토니와 솜뭉치의 물건들로 가득 차버리게 되었다.


"이거야 원, 여기가 강아지 유치원인지 사람이 사는 집인지 모르겠네."


넘쳐나는 용품들 속에서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솜뭉치를 보고 있자니, 지금의 솜뭉치 크기보다도 작은, 어렸던 토니의 1년 전이 생각나 피실 피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토니가 벌써 1살 생일이 지나

이제는 제법 성견의 모양새를 갖췄으니 말이다.


정말 다사다난한 1년이었지만, 그래도 끝내 토니에게 친구를 만들어주었다는 충족감과 행복감을 시작으로

우리 가족에게는 다시 한번 새로운 미션이 생겨났다. 그건 바로 -


솜뭉치에게 어울리는 이름 찾기!



회갈색빛의 털을 가진 까만 발바닥의 솜뭉치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어떻게 지어줄까 고민하며,

우리 가족배 '제2회 작명 대회'가 개최되었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품은 솜뭉치 이름에 대한 저작권!

그렇게 얼렁뚱땅 시작된 대회는 어느새 '질'보다 '양'에 초점이 맞춰진 채 한 없이 일차원적이고 센스 없는

이름이라고 불리기에도 민망한 단어들의 조합이 줄줄줄 나열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땅굴 파고 들어가고 싶은 작명센스가 아닐 수 없는 이름들의 의미 없는 나열을 멈춘 것은

내 발치에 장난감을 가져다 놓고 던져주기만을 기다리던 토니의 인내심이 폭발하며 나온 짖음이었다.


"멍멍!"


갑작스럽게 토니가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발치를 내려다보자, 그제야 자신에게 돌아온 시선이 마음에 드는지 꼬리를 붕붕 흔들며 핫도그 모양의 장난감을 내 발치에 더 가까이 물어다 놓은 토니는 내 손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장난감이 던져지는 타이밍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토니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우리는 의미 없는 이름들의 나열을 잠시 멈춘 채 거실 끝으로 장난감을 휙- 던져주었고, 토니는 기다리며 쌓아온 에너지를 폭발시키듯이 총알처럼 장난감이 던져진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 장난감을 작은 두 입에 왕 물어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순간, 토니가 노는 게 재밌어 보였는지 솜뭉치가 통통거리는 발걸음으로 당근 모양의 장난감을 작은 입으로 물어보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 크기의 1/3이나 되는 장난감을 어떻게든 낑낑거리며 작은 입을 벌려 앙앙 물어대던 솜뭉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속이 상하는지 깡깡 소리를 내며 당근 주위를 빙빙 돌며 작은 몸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고, 그런 솜뭉치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우리 가족은 한참을 그렇게 귀여운 당근과 솜뭉치를 바라보며 소란스러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제풀에 지쳐 당근을 무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꾸벅꾸벅 조는 솜뭉치를 조심스레 들어서 방석에 올려놓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쌔액쌔액 고른 숨소리를 내뱉으며 잠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먼저 떠난 페퍼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1년 전 페퍼의 이름을 지어주던 그날의 기억에서 페퍼라는 이름을 짓게 된 사유의 밑바탕에 토니에게 소중한 짝이 되어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때문에 두서없는 이름들의 나열에서 제법 진지하게 솜뭉치의 이름을 고민하는 조금은 진화한 2회 작명대회가 다시금 조용히 열리기 시작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누구 하나 섣불리 이름을 제안하지 못했고, 그렇게 지난한 고민의 시간이 한 시간쯤 흘러갔을까? 내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솜뭉치의 성격처럼 대범하고 밝으면서, 동시에 토니와 가장 가깝고 친한, 친구 같으면서 설렘이 느껴지는

그런 묘한 관계에 있는 존재의 이름이 스위치가 켜지듯이 내 머릿속에 팟-하고 불을 밝혀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에 빙의라도 한 것처럼 확신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지바!!!! 지바다 지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지바지바 소리를 치는 나의 목소리에 놀란 엄마와 동생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나를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토니와 솜뭉치만이 그저 신이나보이는 나의 텐션에 맞춰 덩달아 폴짝이며 뛰어줄 뿐이었다. 무심한 가족의 반응에도 그저 드디어 마땅한 이름을 찾았다는 마음에 신이 난 나는 우다다다 말을 이어갔다. 이보다 더 찰떡같은 이름은 없노라고 단언하면서 말이다.


"아니 들어봐 봐. 우리가 페퍼 이름 지을 때 토니랑 짝꿍이 되기를 바라면서 지었잖아. 그러면 이번에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토니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를 바랐으니까! 지바가 완전 찰떡이란 말이지!"


NCIS라는 미드에 한창 빠져있던 나에게만 툭 하고 떠오른 이름이었다 보니, NCIS를 모르는 가족들에게는 지바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열을 올렸고, 끝끝내 설득에 성공한 나는 제2회 작명대회의 우승자가 된 기분을 만끽하며 드디어 솜뭉치에게 지바라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게 되었다.


"안녕, 지바야. 이제부터 너는 지바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족과 함께하게 될 거야.

아직은 모든 게 낯설기만 하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서 너를 지켜낼 테니까,

그저 잘 웃고 먹고 자면서 우리 곁에 오래도록 함께하면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시간을 허락해 줄래?"


그렇게 너에게 최선이 되어주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레벨 2의 주니어 집사는 그렇게 또 한걸음 훌쩍 성장할 수 있었다. 좀 더 단단한 완전체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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