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내가 최선이면 좋겠다.

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by 타이타

11. 제 이름은 '설마', 사람 잡는 게 취미죠.



아찔했던 새벽의 해프닝을 뒤로하고, 떠난 부산의 바다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추억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처음 보는 바닷가의 파도, 모래, 비릿한 바다내음까지. 모든 것이 처음인 지바와 토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부산판 분노의 질주라도 찍을 기세로 서로 앞다투어 달리며 에너지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요 작은 두 악동들은 3시간여의 운전과 3번이 넘는 휴게소 산책에도 아직 숨겨둔 체력이 남았는지 리드줄을 팽팽히 당기며 달려 나갔다. 해운대의 바다는 메인 관광지답게 소란히 붐비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 틈새로 힘없이 달려 나가는 집사의 모습과 해맑은 강아지를 마주한 사람들에게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운 관람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겨우 토니와 지바를 진정시켜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매서운 바닷바람을 버틴 지 20여분 쯤 지나갔을 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하늘 높이 올라가 터지기 시작했고, 큰 소리에 놀란 토니와 지바가 짖는 소리를 뒤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의 향연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토니, 지바와 함께하는 첫 여행을 오기까지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을 위로해 주는 것처럼 따뜻한 색감의 불꽃들이 까만 밤하늘을 가득 메우는 모습을 보며 기분 좋은 부산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맞는 거 같은데 진짜로..."


모두가 공평하게 한 살씩 먹는 새해를 맞아 삼삼오오 모여 떡국을 먹던 중 엄마가 옆에 누워있는 지바의 등을 쓰다듬으며 의뭉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우물거리며 떡국을 먹던 우리 삼 남매는 어김없이 방영 중인 신년특집 해리포터 영화 소리를 낮춘 뒤 리모컨을 내려놓고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아침형 인간인 엄마가 떡국에 넣을 고기와 파, 그리고 산적거리 재료들을 사기 위해 새벽장을 나설 참에 지바가 엄마 발치를 빙빙 돌아 지바를 안고 장에 갔다가 이상한 말을 들으셨다는 것이었다. 지바를 차에 잠시 두고 몇 가지 과일과 고기, 채소들을 사서 차에 실어놓은 엄마가 인도 주변에서 가벼운 아침 산책을 시켜줄 요량으로 차에서 기다리던 지바를 안고 내려 인도 주변을 왔다 갔다 하던 도중에, 노상에서 과일을 팔던 할머니께서,


"아고, 거 배가 포동포동한 게 새끼라도 뱄는가베-"



이런 말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말에 털이 부해서 그렇노라 손사래 친 엄마는 차에 지바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걸린 빨간불에 차를 잠시 멈추며, 조수석에 얌전히 앉아있는 지바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고 한다. 요새 제법 살이 올라서 통통한 모양새를 한 지바를. 그리고 그 순간 엄마의 머리에 그날의 기억이 두둥실 떠올랐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장본 물건들을 부엌 테이블에 올려놓고 검색해 본 것이 바로,


"지바가 임신한 것 같다고????"


전부 '임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강아지 임신 증상, 강아지 임신 기간, 1살 안된 강아지도 임신하나요 등등 전부 강아지 임신에 관련된 검색어로 가득한 엄마의 휴대폰을 보고 저마다 휴대폰을 켜 강아지 임신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설마- 하는 의심반 불안을 가지고 검색에 열을 올리던 우리는 몇 가지 공통적인 증상을 확인하고 지바의 배를 쓰다듬어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털에 뒤덮여있던 제법 둥글게 부푼 느낌의 배 모양을 느낄 수 있었고, 어쩐지 부어오른 듯한 지바의 유선들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엄마에게서 시작된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믿고 '싶지가' 않았다. 이제 겨우 토니가 2살, 지바는 한 살조차 되지 않은 1월의 초입이었기에 지바의 생일이 자리한 2월을 한 달 남기고 일어난 이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이 지난 11월 지바의 괴성이 울려 퍼졌던 과거의 기억을 끌어내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지바는, 몰려오는 아침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긴 잠에 빠져들었고, 지바의 도롱거리는 잠꼬대와 토니의 코골이만이 설날 아침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지바의 임신을 확신한 순간부터, 우리 가족의 온 신경은 지바를 향하기 시작했다. 지바가 움직이는 모든 동선을 눈으로 좇으며 지바의 상태가 괜찮은지 집요할 정도로 좇으며 설날 연휴를 보내었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지바를 품에 끌어안고 동물 병원으로 제2의 분노의 질주를 찍으며 달려갔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에게 새해 인사를 건네려던 원장님은 온 얼굴에 '저희 망한 것 같아요'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를 보시곤 진찰실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혹시 지바 몸이 안 좋은 것이냐며 걱정 어린 첫인사를 건네시며 자리에 앉으시는 원장님에게 하루 온종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유추한 것들을 줄줄 읊는 우리의 두서없는 말을 듣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신 원장님은 진찰실 아래 서랍에서 청진기를 꺼내어 지바의 배에 대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원장님은 일단 엑스레이를 한번 찍어보자고 하시면서 지바를 촬영실로 데려가셨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촬영실 문을 열고 우리에게 손짓하시며 잠시 들어오라는 말을 건네셨다. 진찰실에서 촬영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건 지바의 임신을 부정하는 말이 아닌 애원의 말이었다.


'제발 한 마리만 있다고 해주세요.'


이미 지바와 토니 두 마리를 건사하는데도 벅찼던 우리는 무언의 애원을 되뇌며 촬영실 문을 열고 들어섰고, 우리의 간절한 애원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야 가득 들어온 지바의 엑스레이 안에는 벌써 형태를 다 잡은 채로 저마다 지바의 배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세 꼬물이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 이게 두개골이고요, 요게 갈비뼈예요. 보시는 것처럼 총 세 마리가 보이는 걸로 봐선 지바가 세 마리의 엄마가 된 것 같네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존재들의 인영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가 그 순간 떠올렸던 말은 단 한 가지였다.



'우리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