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제법 형태를 잡은 꼬물이의 골격과 11월의 해프닝으로 미루어 짐작한 지바의 출산 예정일은,
임신 사실을 정확히 지각한 오늘로부터 채 20일이 남지 않은 1월 3주 차 무렵이었다.
열 달이 넘는 사람의 임신 기간과는 달리 강아지들의 임신 기간은 절반도 되지 않는 64일에서 66일이라는 2달 정도였고, 보통 40여 일 전후로 임신 사실을 알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원장님의 위로 아닌 위로를 끝으로 병원을 나왔다. 눈발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하는 병원 앞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여행 날짜와 겹치며 가족 모두가 지바의 괴성에 놀랐던 '그날'의 사건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워낙 정확한 날짜에 일어난 일이다 보니 우리 가족은 누구보다 정확한 임신 기간 산출이 가능했고, 그렇게 20일에서 23일이라는 급작스럽게 시작된 정확도 100%의 카운트다운을 머리 위에 무겁게 인 채로 터덜터덜 차에 올라탔다.
신호대기에 꽉 막힌 정체되어 있는 도로가 마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저마다의 차선에 빽빽하게 늘어져 여기저기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차량들을 바라본 지 일 분여쯤 지났을까, 꽉 막힌 도로를 뚫는 청신호를 위로 삼아 그날따라 길게 느껴졌던 병원 일정을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환장하겠다 진짜. 어떻게 해, 이제?"
답답함에 줄곧 다물렸던 입이 쾅하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시작으로 내도록 목 안을 맴돌던 불안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점점 다가오는 지바의 출산일과 함께 우리를 짓누르는 새 생명의 무게가 벌써부터 미래의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더더욱이 지바나 토니를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주체 없는 불안을 그저 허공에 토해낼 뿐, 마땅한 대책도 그럴싸한 대안도 생각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날리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채로 멍하니 하루를 흘려보낸 지 이틀쯤 지났을까?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 인형이 되어버린 우리의 정신을 깨운 것은 갑작스럽게 울린 초록창 밴드의 알림음이었다.
곧 있으면 지바의 생일이 다가와요!
가족 밴드에 미리 생일을 입력해 두면, 다가오는 날짜에 맞춰 알림이 울리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 보니 지바의 생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리기 위해 진동과 함께 울린 알림이었다. 그리고 그 알람과 함께 알림 창에 떠오른 지바의 생일이라는 다섯 글자를 멍하니 곱씹던 엄마가 돌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엄마의 웃음소리에 놀란 토니가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던 자세에서 벌떡 일어나 지바의 앞을 막고 멍멍 짖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가 마치 자기 아내를 지키는 제법 듬직한 남편의 모습 다워서 참나- 하는 어이없는 실소와 함께 내 입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고, 곧이어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으로 웃음꽃이 전염되어 퍼져나갔다.
그렇게 한 참을 웃는 우리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토니가 갑자기 신이 났는지 작은 입으로 장난감을 앙 물어오며 놀아달라는 듯이 내 발치에 툭 던져놓은 채 두세 걸음쯤 뒷걸음질 치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장난감을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였다. 그런 토니의 귀여운 재촉에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장난감을 이리저리 던져주었고, 장난감이 날아가는 방향에 맞춰 바쁘게 거실을 뛰어다니는 토니를 여전히 누워있는 채로 꼬리만 살랑거리며 신남을 표하는 지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토니를 따라 뛰어다녔을 지바였지만, 제법 부풀어 오른 배가 벅찬지 비스듬하게 누운 채로 연신 꼬리만을 흔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붕 뜨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맞다.
채 한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네가 새 생명을 품었다는 것에 느끼는 책임을 죄책감으로 덮어버리는 건,
어른으로서도, 너를 데려온 순간부터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고 결심한 집사로서도,
모두 실격이라는 걸.
지금은 그저 한 없이 힘들고, 매일 변화하는 몸 상태에 낯설고 무서울 지바에게 전보다 더 많이 손을 뻗어야 한다는 걸,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깨달으며 저릿하게 아려오는 가슴께를 꾹 누르며 손바닥을 비벼 따뜻하게 올라오는 열기를 지바의 배에 대어 둥글게 문지르며 되뇌었던 것 같다.
"지바야, 걱정하지 마. 언니가 다 지켜줄게. 너도 네 아가들도."
비록 겁나고 두려운 하루하루지만, 지바의 생일에 다가오는 소중한 생명이라는 선물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 하겠노라 결심하며 그렇게 다가오는 디데이를 불안이 아닌 설렘으로 덧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