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필요한 게 또 뭐 있더라? 아 참참, 우리 가족 티도 주문해야 해! 이참에 공항에도 옷 똑같이 입고 갈까?!"
"얼씨구? 안 간다면서 결사반대를 외치던 건 어디 사는 누구였을까나?"
그건 그거고! 어차피 가기로 한 거 신나게 준비하면 좋잖아!
신이 잔뜩 오른 내 목소리가 비꼬는 말투의 엄마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이어졌다.
어쩌다 보니 반대를 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신이 오른 내 모습에 멋쩍은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여행 전 준비 기간에서 오는 설렘도 만끽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마음속에서 여행의 설렘이 매일같이 풍성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온갖 사고 뉴스가 쏟아지던 애견 호텔이나 카페, 유치원에 맡길 필요도 없어져 마음이 더욱 가벼워진 탓이었다. 무려 엄마의 지인 분께서 흔쾌히 우리 집에서 오둥이를 돌봐 주시겠다는 답을 돌려주셨기 때문이었다.
"진짜 세상에서 제일 착하신 분 같아. 우리 한테는 테레사 수녀님보다 더 은혜로운 분이라니까!"
마찬가지로 반대파에 선봉에 섰던 여동생도 큰 소리와 함께 그간 숨겨왔던 들뜸을 마음껏 표출해 왔다.
내도록 속을 감추며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 자의 후련함이 깃든 얼굴 표정이었다.
"이제야 좀 여행 가는 집 풍경 같네."
행복한 미소를 걸고 있는 우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그간 말하지 않았던 서운함과 속상함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내도록 양분화되던 의견들이 하나로 모여 결국 그 감정 덩어리를 깨끗이 털어내어 진 모양이었다.
"그럼, 여행 날 아침에 일찍 올게요! 애들이 순해서 그래도 다행이네요~"
"네네, 이모! 진짜 감사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성견이 되면서 제법 낯을 가리는 삼둥이로 인해 이모와의 첫 만남이 있기 전까지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는,
'여차하면 그냥 안 가는 게...'
라는 마음에도 없는 문장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이모가 처음 집에 발을 들인 순간 잠시 짖어대며 낯섦을 표현하던 삼둥이들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주는 이모 덕분에 금세 경계심을 풀고 궁금하다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루시가 여전히 낯을 가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 하며 웃어넘겼다.
그렇게 두어 번의 만남이 더 있고 난 뒤에도 루시는 여전히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이모의 손길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뭐, 언니 오빠도 있고 엄마 아빠도 같이 있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위안과 함께 우리 가족은 마지막 만남을 끝으로 본격적인 여행 준비의 마무리를 지어가고 있었다.
"흠, 이 정도면 되려나?"
일명 '오둥이 주의보'라는 제목의 세 장 짜리 종이에 스테이플러를 찍곤 한 장 한 장 다시 한번 읽어 내리던 내가 묘한 불안감에 여동생에게 반문하며 종이를 넘겨주었다.
오둥이의 사진과 이름이 적혀있는 첫 장을 시작으로 밥을 주는 시간, 간식을 주는 시간과 횟수, 그리고 각각의 양을 소분해 둔 봉지 위에 메모와 함께 혹시나 있을 비상사태를 대비할 수 있는 오둥이 컨트롤 방법까지-
누가 보면 한 달짜리 여행이라도 가는 듯, 불안감이 그득그득한 글씨체에 여동생이 내게 눈을 흘기며 가벼운 타박을 건네었다.
스스로도 깨달을 정도로 꽤 많은 주절거림이 흰 종이 위에 어지러이 적혀 있는 느낌에 민망한 기분이 들어,
크흠- 크흠- 하며 부러 큰 소리를 내어 목을 가다듬었다.
"뭐, 혹시나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잖아? 토니가 갑자기 눈 깜빡거리면 어느 인공눈물 넣어 주어야 하는지도 알려 드려야 하고, 또 루시가 귀를 자꾸 털면 청소를..."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내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덩달아 불안이 옮아버린 여동생도 타박하던 투를 내려놓고, 어느새 에이 설마- 하는 불안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신나서 들썩 거리던 기분은 어디에 팽개쳐 두었는지, 순식간에 침울해진 우리 둘을 바라보던 엄마가 결국 한숨과 함께 종이를 뺏어 드셨다.
"종이 압수. 펜도 압수. 이제 그만 써. 이거 다 일어나지도 않아, 절대."
항변하려 입을 벙끗거리던 우리 둘은, 쓰읍- 하며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결국 조가비처럼 입을 꾹 다물며 실체 없는 불안을 꾹 삼켜내었다.
'그렇지만, 엄마... 세상에 절대...라는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머릿속을 부유하는 불안은 그렇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채로 웅웅 맴돌며 목구멍 속으로 먹혀들었다.
D-9,
이모와 똥강아지의 세 번째 만남을 끝으로, 결전의 날이 한 자릿수 카운트로 돌입하던 날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