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취향 vs 엄마의 취향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때, 나름 고학년이었지만 난 빨간 양말을 신고 등교를 하곤 했다.
몇몇 친구들은 그런 내 양말을 보고 신나게 놀려댔다.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양말 색깔이 어때서. 난 엄마가 사다주신 양말을 그냥 신었을 뿐인데.
중고등학생 때는 참 편했던 거 같다. '교복'이라는 통일된 드레스 코드가 존재했기 때문에 '패션 센스'가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학원을 갈 때나 주말에 입는 '사복'은 여전히 엄마가 사다주시는 옷으로 갈음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는 참 좋으셨을 거 같다. 마음대로 사다주면 사다주는대로 입고 다녀주니 엄마는 엄마의 취향을 고스란히 딸에게 투영할 수 있었을테니.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전교생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으로, 두발단속도 엄격한데다 아무런 악세서리 착용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빡센' 학교였다. 핸드폰 사용도 금지되어 있었고, 인터넷도 '인강'을 듣기 위한게 아니면 제한되어 있어서 세상과 단절된 채 공부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나이키', '퓨마(당시 유행하던 브랜드)'같은 브랜드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얀 양말 10켤레를 매일 돌려신고, 교복과 체육복으로 일주일을 생활했기에 스스로 옷을 골라 살 기회는 아주 제한됐다. 주말에 가끔 친구들과 부평역 지하상가를 찾아가 쇼핑을 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친구들이 고르는 옷과 비슷한 옷을 사들고 왔던 것 같다.
나에게, '취향'이란 없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나니 예쁜 옷, 예쁜 가방, 예쁜 신발을 갖고다니는 친구들이 생겼다. 생전 처음보는 브랜드의 옷들과 가방들이 신기했고, 또 갖고 싶어졌다.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러브캣'에서 갖고 싶던 지갑을 산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핑크색 큐빅이 하트 모양으로 박힌 반지갑이 너무 예뻐서 혹시라도 때가 탈까 정말 애지중지하며 들고 다녔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과 친구 하나와 밥을 먹는데 그 친구의 가방에 매어져 있는 스카프가 눈에 들어왔다. 가방도 예뻤는데, 가방에 매인 스카프가 더 예뻤다. 루이비통 '스피디 라인'이었던 그 가방은 사실 대학교1학년생이 들기엔 가격부터 후덜덜인 가방이었다. 그런데 그 가방이 정말 예뻐 보인 건 가방 자체가 아니었다. 거기에 매인 짧은 스카프 때문이었다. 리본 모양도 어찌나 예쁘던지 보자마자 '갖고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때부터 그 친구의 '취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친구가 뿌리던 향수는 디올의 'Forever and ever Dior'. 당시 한정판으로 나온 향수였는데, 향을 맡자마자 홀딱 반해버렸다. 바로 백화점으로 달려가서 구입했다. 한정판의 인기가 하늘을 찔러 결국 정식 판매가 되기 시작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스테디셀러로 디올의 대표 향수가 된 상품이다.
그 친구의 싸이월드에는 그 친구의 취향이 담긴 사진들이 올라왔다.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참 산뜻했고 우아했다. 워낙 집이 부유한 친구라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외 명품 브랜드 상품들도 다수 올라왔다.
부러웠다. 솔직히 참 부러웠다. 그 친구의 취향이 부러웠고, 그런 취향을 마음껏 갖출 수 있는 재력도 부러웠다. 그리고 다짐했다.
난 내 딸에게 '자신의 취향'을 가진 삶을 살게 하리라.
작은 소품 하나를 사더라도 취향이 묻어나는 소비를 할 수 있는 그런 여자로 키우리라.
(사진 속 딸 방에 걸린 드레스들 모두 본인이 직접 고른 드레스들이다. 아래 놓인 무지개 액자도 그녀의 선택을 받았다. 벽에 걸린 등도 구매 전 그녀의 컨펌을 받아야 했다. )
이제 6살이 된 내 딸은 취향이 확고하다.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
물론, 내가 그렇게 키웠다.
옷 한 벌을 사도 딸이 고르게 한다. 백화점이나 아웃렛에 함께 가서 샵을 돌아다니며 옷을 고른다. 바지를 사야할 때는 여러 벌의 바지를 딸 앞에 제시하고, 딸이 선택하는 바지를 구입한다. 원피스도, 드레스도 마찬가지. 심지어 인터넷으로 옷을 구매할 때도 옆에 앉혀놓고 옷을 고르게 한다.
보통 몇 벌의 옷을 제시하고 그 속에서 딸이 선택하는 방식인데 딸이 원하는 옷이 없으면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헤매이기도 한다. 확실히 본인이 고른 옷은 즐겁게 입는다. 신발도, 소품도 모두 마찬가지. 간혹 시댁 혹은 친정에서 옷을 사서 보내주시면 안 입겠다고 난동을 부리는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데, 억지로 한 두 번 입히고나면 진이 빠져 그 옷은 멀리하게 된다.
내 딸은 이토록 취향이 확고하다.
문제는 내 취향과 딸의 취향이 상충할 때 생겨난다. 난 너무 반짝거리거나, 너무 캐릭터가 크게 그려진 옷은 지양하고 싶은데 우리 딸은 그런 스타일을 '최애'로 하는 나이. '시크릿쥬쥬'가 커다랗게 박힌 원피스를 골라 들때면 표정관리가 안되곤 한다. 그러면 타협에 돌입한다.
"엄마 생각에는 이 옷보다는 이 옷이 더 예쁜거 같아. 우리 딸 피부톤에도 이게 더 잘 어울리고. 유치원에서 바깥놀이 할 때도 이게 더 편하지 않을까?"
"아니야. 난 시크릿쥬쥬가 좋단 말이야"
"그러면 시크릿쥬쥬 원피스 사줄테니 이 옷도 같이 사자. 두 개 다 사서 번갈아 입는 건 어때?"
"음... 좋아. 대신 시크릿쥬쥬를 먼저 입을꺼야"
"그래!"
결국 협상에서 승리(?)하는 건 딸이지만, 나 역시 내 취향이 일부 투영된 데 만족한다.
협상 과정은 어렵고, 그 과정에서 결국 소비 지출은 늘어나지만 그래도 난 본인의 취향이 확고한 내 딸이 좋다.
그녀의 취향 속에 엄마의 취향이 한 스푼 가미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떠랴.
결국은 너의 삶이고 너의 옷이고 너의 옷장이거늘.
엄마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어도 너가 행복하면 그것이 제일이지.
그리고 항상 딸과 함께 쇼핑을 하며 해주는 말이 있다.
"너가 무언가를 사서 그게 다른 사람 눈에 예뻐 보이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의 눈에 예쁘냐는 거란다. 다른 사람 모두가 안 예쁘다고 해도, 네 눈에 예쁘면 그건 예쁜거야. 그런 소비를 하는 어른으로 자라렴 :)"
정말로 그런 삶을 살길 바란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족하는 소비를 하는 삶.
난 그렇게 살지 못하기에, 내 딸은 그렇게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