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얼른 100살이 되면 좋겠어요"

워킹맘 기자로 산다는 것

by 스위트랜드

어느 날, 6살인 우리 딸이 한 말을 듣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는 거죠? 저도 가보고 싶어요."


충격을 받았다.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한 번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상태에서 딸은 '죽음'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나 보다.


예전부터 전래동화를 즐겨 읽었는데, 호랑이도 죽고, 어르신들도 돌아가시고, 뭐 그런 내용들이 종종 나오긴 했었다. 예쁜 그림책 '거인과 정원'에서도 거인이 아이들에게 정원을 내어주고 나이가 들어 하늘나라로 가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최근 딸이 가장 즐겨 읽는 책 '알사탕'에도 풍선껌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하늘나라로부터 담아와 뻥 터지며 아이에게 전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여러 이야기들이 우리 딸 머릿속에 '죽음과 하늘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줬나 보다.


하지만 당장 저 이야기를 들은 엄마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딸. 죽는다는 건 다시는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나지 못한다는 거야. 엄마는 무서운데, 딸은 안 무서워? 다시 우리 가족 못 만나도 괜찮아?"라고 말한 건 내 실수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딸은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거나, 죽는다는 이야기를 더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 딸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얼른 100살이 되면 좋겠어요"


6살 꼬맹이에게 100살이 된다는 건 어떤 건지, 사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100살이 되면 늙어서 아픈 곳도 많아지고, 병원을 계속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대응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리 딸이 왜 자꾸 100살이 되고 싶다고 하는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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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딸. 근데 말이야. 대체 왜 100살이 되고 싶어?

6살 딸 : 응. 왜냐면 난 할머니의 엄마 아빠를 만나보고 싶거든.

나 : 할머니의 엄마 아빠? 그게 무슨 소리야?

6살 딸 : 100살이 되면 죽잖아. 그럼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의 엄마 아빠를 만나볼 수 있을 거 아니야. 죽는 건 무서워. 그래서 엄마한테 죽는다는 말은 안 하는 거야. 대신 100살이 된다고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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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100살이 되고 싶다는 게 '죽음'을 의미한다고는 단 한순간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어린 딸에게 100살은 '죽는 나이'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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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딸. 하늘나라가 궁금해?

6살 딸 : 응. 별나라잖아.

나 : 근데 하늘나라에 가는 건 죽는 거야. 그럼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해

6살 딸 : 아니잖아. 사람은 언젠가 죽고, 그럼 다 하늘나라로 오잖아. 그럼 하늘나라에서 다 같이 만나면 되지.

나 : 그렇긴 한데;;;;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려. 먼저 하늘나라에 간 사람을 다시 만나려면 엄청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해

6살 딸 : 왜? 하늘나라가 별나라라 멀어서?

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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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도 말발로 밀려본 적 없는 나는 그렇게 6살 난 딸의 '죽음에 관한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우물거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아이에게 알려줘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최선을 다해 있는 그대로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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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딸, 죽는다는 건 무서운 건 아니야. 왜냐면 누구나 다 언젠가는 죽거든.

6살 딸 : 그래? 엄마가 지난번에 무섭다고 해서 난 무서운 건 줄 알았어.

나 : 응 그건 엄마가 잘못 말했어. 미안해. 엄마가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얘기했네. 사실 죽는다는 건 무서운 게 아니고 '슬픈'거야. 왜냐면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거거든.

6살 딸 : 다시 만나지 못해?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되잖아.

나 : 응. 먼저 하늘나라에 가신 분을 만나려면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거든. 그 사이에 우리 딸은 초등학생이 되어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또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하고 싶은 꿈을 찾고, 대학생이 되어서 열심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도 해보고, 또 엄마가 아빠라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 우리 예쁜 꼬맹이들 만났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도 해봐야지. 엄마가 기자가 되었듯이 우리 딸도 하고 싶은 꿈 이루어봐야 하고, 또 세계여행도 다녀봐야지. 얼마나 그 사이에 할 일이 많은데. 그런 거 다~ 하려면 엄청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러고 나서 나이가 많이 많이 들어서 더 이상 내 삶에 후회가 없을 때, 그때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도 만나고, 할머니의 엄마 아빠도 만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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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이야기를 하며 내 가슴이 벅차올랐는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죽음과 하늘나라를 설명하면서 내가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아야 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슬픔의 감정을 꾹꾹 가슴속에 눌러 담았다.


30여 분 간의 심도 깊은(?) 잠자리 대화가 끝나고, 딸은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딸의 머릿결을 뒤로 넘겨주며 이마에 뽀뽀를 했다. 육아는 어렵고, 또 어렵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는 조용히 거실 테이블에 앉아 첫째 유치원 가방에 들어있던 '언어 이야기' 책을 꺼냈다.


'언어 이야기'는 유치원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의 '비밀노트'같은 건데, 공동육아를 중시하는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법을 쓰는 딸아이의 유치원에서는 부모와 선생님의 소통을 위해 이 '언어 이야기'라는 노트를 활용했다.


아이는 1주일에 한 번씩 유치원에서 알려주는 문장 하나씩을 집으로 가져와 부모와 함께 언어 이야기에 적는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부모란이 있어 부모가 유치원에 전하고 싶은 말이나, 궁금한 사항을 적어 보낼 수 있다. 선생님들께서는 매일 이 '언어 이야기' 노트를 확인하신다. 매번 부모란에 뭔가를 적어 보내면 다음날 예쁜 멍멍이나 야옹이가 그려진 도장이 쾅 찍혀 돌아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6살이 되면서 매주 하나씩의 속담을 배워와 적어가는데 지난주 언어 이야기는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였다. 알록달록 예쁘게 색칠된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를 지켜보노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옆에 학부모 메모란에 조용히 오늘 있었던 일을 적어 내려갔다.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죽음과 하늘나라에 관심 폭발인 6살 꼬맹이에게, 부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날의 딸과의 대화를 차근차근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한 페이지가 가득 찼다.


그리고 다음 날,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요즘 많은 친구들이 죽음이나 하늘나라에 관심이 높아요^^ 그런 시기랍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잘하고 계신 거예요. 아이에게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죽음을 알려주시는 게 좋아요. 동화책을 이용하셔도 되고요, 혹은 키우시는 동물이나 곤충, 혹은 식물에 빗대서 죽음을 알려줘도 좋아요. 근데요 어머니, 최근에 저희 반에서 키우는 올챙이가 개구리가 됐는데요. 그중 한 마리가 참 공교롭게도 오늘 하늘나라로 갔네요^^ 제가 이 개구리로 **이에게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려줘 보겠습니다. 그리고 언어이야기에 추천드리는 책도 적어놨어요~ 저희도 이번에 어머님이 주신 언어이야기 내용으로 다 같이 모여서 이런 내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는 게 좋을지 머리 맞대고 고민해볼게요. 더 좋은 방법 찾거나 하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너무 감사했다. 뭔가 뻥 뚫리는 기분. 아, 내가 하는 방식이 틀린 건 아니구나. 그리고 이런 죽음, 혹은 하늘나라를 다루는 동화책들이 있구나. 선생님들은 괜히 선생님들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펼쳐본 언어 이야기 속에는 6권의 삶과 죽음, 하늘나라를 아이들에게 유쾌하고 쉽게, 혹은 감동적으로 전해주는 그림책이 적혀 있었다.


곧장 책들을 주문했다. 아직 함께 읽진 못했다.

주말 전에 도착할 책들이 기다려진다. 아이와 함께 나 역시 한 뼘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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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무서운 게 아니야. 슬픈 거지.

그리고 그건 비단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야. 동물도, 곤충도, 식물도 모두 죽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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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잊고 있던 삶의 마무리.

되돌아보게 되었다.

저 6권의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또 한 뼘 자라겠지.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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