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인 남편, 남편인 친구 -1
워킹맘 기자의 삶
나와 남편은 오롯히 7년을 친구로 지낸 사이.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며 알게된 우리는 7년 간의 친구 사이를 청산하고 2013년, 연인이 됐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거의 1년(?) 빨리 태어난 누나인데, 나는 4월생, 그는 빠른 1월생이다. 솔직히 밥을 먹어도 내가 남편보다 몇 백 그릇은 더 먹었는데 그래도 학년은 같으니 '친구'로 인정해줬다.
연인이 되기 전에는 정말 순수한 '친구'였어서, 지방 파견근무를 가있는 남편이 서울에 올 일이 있으면 "딱히 묵을 곳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자~"라고 할 정도였다. 실제 한 번 자취집에 와서 자고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아무런 일도 없었다^^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하고 둘이 순댓국밥 집을 찾아가 아침을 먹고 올 정도였다. '찐친구'였달까.
많은 지인들이 우리가 어떻게 연인이 됐는지를 매우 궁금해하는데, 딱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바로 '퇴사'.
고등학생 시절부터 기자가 꿈이었던 날 대학시절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늘 내게 "꿈이 있는 사람이 신기하다"고 말하곤 했었다. 자긴 특별한 꿈이 없었고, 나처럼 확고한 꿈을 갖고, 그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도 주변에서 유일하다고 했다.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토익점수 받아 좋은 회사 취직하는 게 목표였던 남편에게 "난 경제전문기자가 될꺼야(당시에는 '경제전문' 기자가 되고 싶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가 신기할 법도 했겠지 싶다.
남편은 대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는데, 졸업식날 대학교 총장에게 단상에서 졸업생을 대표로 무슨 상을 받았다. 금융 자격증만 14개. 토익 960점. 동아리 회장에 붙기 힘든 공기업 인턴에, 지원하는 대기업·금융회사마다 족족 최종합격.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학점이 4.3 만점에 4.2. 나같은 '학린이' 입장에서는 미친 학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그가 늘 나에게 "신기하다"고 말해주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고, 날 특별히 생각해주는 친구가 고맙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철저히 내게 친구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 순간이 있는데, 남편이 우리 회사 근처로 놀러와 함께 등갈비를 뜯어먹고 빙수를 먹겠다고 회사 바로 옆 카페에 들어갔을 때 회사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내게 "남자친구야?"라고 여러 차례 묻고 또 물었고, 난 "절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또 말하며 학을 뗐다. 근데 결국 난 그 남자와 결혼을 했고, 결혼방 사진을 본 그 선배는 화를 내며 "아니 그게 뭐 그렇게 비밀이라고 거짓말을 했어?!!!!!"라고 나를 추궁했다. 그 땐 분명 친구였고, 그와 결혼할거라고는 정말 발톱의 때 만큼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난 억울했다.
어쨋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느 봄날, 그에게 전화 한 통을 걸어 고민상담을 털어놨다. 너무나 쓰고 싶던 기사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킬이 된(기사가 나가지 못하게 된 상황을 말하는 기자들 용어) 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사는 무조건 나가야 하는 기사인데, 선배들과 데스크들, 회사는 생각이 달랐다. 너무 속상해 그에게 전화를 해 "기자를 때려쳐야겠다"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남편은 회사로 택시를 타고 달려와줬다. 회사 앞 카페에서 왜 내가 기자를 그만둬야하는지 열심히 열변을 토하자,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대기업도 똑같아. 거지같기는"
그는 내게 본인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얼마나 열심히 복사를 하고 있는지, '서류 구멍뚫어 고리 끼우기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줄줄줄 늘어놨다. 한 번도 내게 한 적 없던 이야기였다. 복사기를 잘못 눌러 A4지에 해야할 복사를 A5지에 해서 혼이 난 일까지. 듣다보니 웃기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회사를 사랑한다고 했다. 자긴 자기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가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같은 성격의 애가 회사 출근부터 퇴근까지 한 자리에 앉아 매일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넌 그냥 현장을 뛰어다니고, 너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다른 내용을 접하며 사는게 어울린다고도 했다.
이 때부터였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달라 보인 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택시를 타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 이어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