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기자로 산다는 것
'역아' 였던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고 5일 정도 지나자 초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란 초유를 열심히 유축(가슴에 기계를 대고 젖소처럼 모유를 짜내는 행위)해 신생아실로 나르며 뿌듯했고, 행복했다.
모유수유 =>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엄마로서의 첫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느낌.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난 심한 젖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젖이 뭉치며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육아는 고행길이 되었다.
모유수유. 참 어렵고도 어려운 엄마의 역할이다.
요즘은 분유가 워낙 잘 나와서(산양분유다 뭐다 종류도 각양각색) 굳이 모유에 집착하지 않는 엄마들도 많다. 조리원에서부터 이미 단유(모유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말리는 것)를 하고 퇴소하는 엄마들도 적지 않다.
아이 둘을 키워보니, 모유수유는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다.
모유를 훨씬 오래 먹은 첫째보다 둘째가 더 건강하고 잔병치레가 없는 걸 봤을 때 모유가 면역력을 키워준다는 것 역시 '과장광고'같은 게 아닐까 싶다. 주변 다른 아기들을 많이 봐왔지만, 모유를 먹었다고 감기에 걸리지 않는 아기는 없다. 오히려 분유를 먹고 자랐는데도 우리 아이가 감기 5번 걸릴 때 그 아이는 1번 걸린 경우도 봤다.
그런데 난, 첫째의 모유수유에 집착했다. 어떻게든 완모(분유를 먹이지 않고, 모유만 먹여 아기를 키우는 것)로 돌까지 아기를 키우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황당할 정도로 '집착'했던 것 같다.
난 차병원에서 두 아이를 모두 낳았는데, 차병원에는 병원 내에 가슴마사지실이 있어서 산모들이 1회 당 5만원(5년 전 가격)을 내고 가슴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가슴마사지란, 유선(모유가 생성되어 나오는 가슴 속 선들)이 막혀 젖몸살을 앓거나 모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고생하는 엄마들이 전문가의 손길을 통해 가슴 마사지를 받아 유선을 뚫어주는 걸 말한다. 근데 이게 정말 아프다. 가슴을 사정없이 주물러대는데,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프다. 난 이 마사지를 병원에서부터 받기 시작했다. 안 그러면 가슴이 불에 데인 듯 뜨겁게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다. (이건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르는 고통이다ㅠ)
아기를 낳고 들어간 조리원에서도 매일 가슴마사지를 해줬다. 전문가의 손길에 가슴을 내맡기면, 요리조리 가슴을 주무르며 유선을 뚫어준다. 엄청 아픈데, 또 그만큼 엄청 시원하다. 매일 한 시간씩 가슴 마사지를 받으며 아기에게 직수(아기가 직접 엄마 젖을 빨아먹는 것)를 했고, 3~4시간마다 아기는 엄마 가슴팍에 매달려 젖을 물었다. 그 모습은 '사랑스럽다'는 표현으로 설명이 안되는데, 묘하게'모성애'를 자극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늘 밝고 긍정적이던 내가 아기를 낳고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걸 겪게 된거다. 말로만 듣던 '산후우울증'이었다. 사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산후우울증을 겪을 거라고는.
호르몬의 변화와 바뀐 삶의 루틴이 날 '산후우울증'으로 몰아넣었다.
난 늘 빨빨거리며 어디든 돌아다니며 살아왔다. 심지어 직업도 '기자'라, 한 곳에 머물며 일해본 적이 없다. 정말 '자유롭게' 살았다. 그런 내가 완전히 갇힌 삶을 살게 되었다. 산후풍이 온다기에 바람도 제대로 쐬지 못했다. 게다가 내가 없으면 손만 닿아도 부서질 것 같은 작고 여린 생명체가 굶는다. 어딜 가더라도 3시간 안에 무조건 아기 곁으로 돌아와야한다. 그게 신생아를 둔 엄마의 숙명같은 것이었다.
내 기억 속엔 없는데, 친정엄마가 훗날 말씀해주신 얘기를 듣고 그 당시 나의 심각했던 우울증 상태를 새삼 깨달은 적이 있었다. 조리원에서 나와 친정엄마네로 산후조리를 하러 갔었는데 새벽녘 아기 모유수유를 마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아기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난 기억나지 않는다. 친정엄마는 그 때 내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난 지 50일 쯤 됐을 때 내가 아기와 함께 친정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냥 못 보내시고 결국은 우리집으로 쫓아오셔서 100일까지 함께 키워주셨다.
그 과정에서 난 모유수유에 더욱 더 집착했다. 가슴마사지를 받는 데만 200만 원 넘게 썼다. 유명하다는 오케타니 샵은 다 다녔다. 차를 타고 2시간 걸리는 거리를 찾아가기도 했다.
아기가 젖을 빠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 가슴은 점점 너덜너덜해졌다. 유두는 갈갈이 찢겨 피가 났다. 샤워를 할 때마다 물줄기가 가슴을 타고 내리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아기가 물고 빠는 가슴에 아무 연고나 바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기가 젖을 못 빨게 할 수도 없었다. 아기가 젖을 물 때마다 가슴 깊은 구석까지 고통이 밀려들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그런데도 난 내려놓지 못했다.
그 좋아하던 매운 음식들도 일절 먹지 못했다. 못 참고 한입 먹은 김치에 아기 변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걸 보고나니 먹을 생각이 달아났다. 먹으면 유선이 더 막힌다고 해서 빵, 쿠키 같은 밀가루 음식도 피해야 했다. 카페인은 아기에게 치명적이라 커피 역시 입에도 대지 않았다.
몸살이 나도 타이레놀 하나 먹으며 버텨야했다. 약 성분이 모유에 모두 담겨 아기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하다 손가락이 베여도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간 후시딘도 바르지 못했다. 그저 비판텐 연고 하나에 의지하며 돌까지 버텼다.
모유수유는 엄마의 '정신 수양'으로 이뤄지는 희생의 결정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모유수유로 아기에게 미안함을 속죄한 것 같다. 늘 이 아기가 없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아기 없이 푹 자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죄인같았다. 그 죄스러움을 모유를 먹이며 이겨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도 너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다는 걸로 아기에 대한 미안함을 없애려 한 것이다.
참 어리석었다. 그렇게 사는게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옳은 방법도 아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 엄마가 힘들면 아기는 배로 힘들다. 엄마가 행복한 길이 곧 아기를 위하는 길이다. 이건 두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둘째를 낳으면서는 첫째 때 노하우가 쌓여 어렵지 않게 완모에 들어섰다. 이미 수백만 원을 쓰며 뚫어놓은(?), 신의 손을 가진 가슴마사지 선생님을 알고 있었고, 완모 성공의 지름길도 익혀놓은 터였다. 하지만 둘을 키우며 완모를 한다는 건 역시 쉽지 않았다. 모유 양이 많아 넘치는 모유로 모유비누도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던 난 둘째가 6개월이 됐을 때 몸살이 나자마자 단유했다. 산양분유 좋은걸 사서 먹여서그런가, 둘째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둘째를 6개월 정도 완모했으면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 둘째가 3살이 되었다. 첫째보다 더 잔병치레 없이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아직 우리 집 냉장고에는 그 당시 만들어놓은 모유비누가 2개 남아있다. 이상하게 아까워서 꺼내 쓰지 못하고 있는데, 이참에 얼른 꺼내서 써버려야겠다.
모유에 집착하지 말자. 육아는 엄마가 행복한 게 무조건 최우선이다.
모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자.
육아를 하며 무언가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육아는 '헬게이트'가 된다는 걸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