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루 종일 이 집에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워킹맘 기자로 산다는 것
오늘도 어김없이 6시 반. '아빠러버' 둘째는"아빠"를 외치며 몸부림을 치다 잠에서 깼다.
옆에서 곤히 자던 첫째 역시 둘째의 소리에 뒤척뒤척거리다 무거운 눈커풀을 들어올렸다.
두 녀석의 기상이 이뤄졌다.
30여 분간 두 아이의 기본적인 케어를 진행했다. 첫째의 복통이 어떤지 점검하고(최근 '반복적 복통'을 앓고 있다), 둘째의 밤새 무거워진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를 따라 살짝 데워 건넨다. 그 사이 두 아이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자동차 장난감을 가져다 '부릉부릉'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무엇도 특별히 하는 거 없는 30여 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7시가 됐다.
난 출근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친정엄마가 우리집에 들어서시는 7시,
이 때부터 우리집의 '출근 전쟁'은 시작된다.
엄마가 곧 집을 떠나 일터로 간다는 사실에 두 아이들은 온갖 땡깡을 부리기 시작한다. 잘 먹던 밥도 먹지 않겠다고 하고, 응아를 한 기저귀를 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갈으라고 한다. 출근 준비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고생하시는 친정엄마 손을 덜어보고자 옷을 걸치다 말고 둘째의 기저귀를 갈다 보면 '이게 무슨 난리통인가' 싶은 생각이 솟구쳐 오른다.
그래도 난 한 번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적은 없었다. 난 엄마이기도 하지만 '기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내 꿈이고, 내 삶이고, 내 업이다.
기자라는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난 이 직업이 좋다.
내가 쓰는 기사로 너희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면, 엄마가 너희 곁에 붙어 너희를 케어하는 것 못지 않게 너희를 위한 중요한 일을 하는 거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 생각이 순간 무너졌다.
지난주부터 계속 아파 응급실도 가고, 항생제를 먹어온 첫째가 울먹이며 내게 말한 이 한 마디 때문이다.
"엄마, 하루 종일 이 집에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 이 한 문장이 그토록 가슴에 사무쳤는지 모르겠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말이었다.
작은 입에서 내뱉어진 저 한 문장이 오늘따라 너무나 가슴 아팠다.
어린 시절, 나 역시 엄마가 일을 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늘 자식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에는 어김없이 퇴근해 집에 계셨고, 난 '일하는 엄마'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자랐다. 엄마라고 더 긴 시간,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으셨을 리 없다. 하지만 엄마는 꼭 집에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한 엄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훨씬 길고, 아침 일찍 나가고,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아이들이 잠든 뒤 귀가하는 날도 부지기수. 기자라는 업의 특성상 저녁 술자리가 많고, 그런 자리를 통해 취재원을 만나고 취재가 이뤄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삶의 루틴이다.
어쩌면 난, 내 아이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건 아닐까.
엄마라는 존재가 곁에 있길 바라는 내 아이들은 엄마가 그냥 온전히 엄마이길 바랄뿐인데, 멋진 '기자 엄마'는 내 욕심의 허상인 건 아닐까.
근데 문득, 이런 날 키운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본인의 삶을 모두 내던지고 딸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딸의 곁으로 달려와 준 내 엄마. 딸의 두 자식을 키워주며 늘 "걱정마. 넌 니 할 일 잘하면 돼. 엄마가 두 녀석 잘 키워줄거니까."라고 날 안심시켜주시는, 내 엄마.
미안해하지 말아야지.
난 엄마지만 그 전에 내 엄마의 딸이다.
그리고 그 전에 그냥 나 자신이다.
희생은 반드시 날 내려놔야만 희생이 아니니까. 쥐고 있는 모든 것의 '중간'을 잘 찾고, 그 중간을 잘 유지하며 버티다보면 아이들은 클 것이다. 나의 선배들이, 그 선배들의 선배들이 그래왔듯이.
그리고 나의 후배들이 볼 내가 그리 할 것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