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 야근을 하는 날 아이가 아프다.

워킹맘 기자로 산다는 것

by 스위트랜드

항상 내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이 순간만큼은 '전업맘'이고픈데, 바로 아이가 아플 때다.


기자들은 밤사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돌아가며 불침번을 선다.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서야하는 이 밤샘야근은 어떨 땐 '워킹맘의 자유'가 되어 주기도 하는데, 단 조건이 있다.


1. 집안이 평화롭다

2. 나라가 평화롭다

3. 세계가 평화롭다


이 3가지가 충족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드라마를 몰아 보거나, 보고 싶던 영화를 조용히 감상하거나, 혹은 시간이 없어 찾아보지 못했던 각종 정보를 뒤져보는 '자유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최근 이사 준비로 집 전체를 인테리어한 나는 종종 서는 밤샘야근 시간을 활용해 인테리어 자재를 공부하고 원하는 '화이트 앤 우드' 컨셉의 사진을 긁어모으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1번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다. 아이가 아프다. 6살 첫째가 며칠 전부터 배가 아프다며 세상 만사 짜증을 부렸다. 두 차례 찾은 병원이 내린 병명은 '요도염'.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아이는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괴로워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난 여느 부모들처럼 '아이보다 더' 괴로웠다.


항생제를 처방받아온 첫째는 오늘 두 번째 약을 복용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난 이미 출근한 상태였고, 야간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첫째는 쉽게 잠이 들지 못한 채 엄마가 보고싶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와의 통화를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 작은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엄마는 그 순간 기자였기에, '엄마'이지 못했다.


회의가 끝나고 통화가 가능해졌을 땐 이미 첫째가 잠이 든 후였다. 눈물 얼룩이 채 지워지지 않았을 잠든 첫째의 얼굴을 떠올리니 속이 상했다. 이게 뭐라고 난 그 작은 아이와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주말에.


기자라는 직업은 참 어렵다. 특히 '워킹맘 기자'는 더 그런 것 같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척에서 손발 걷어부치고 도와주시는 엄마 덕분에 이 '거지같은'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아이 둘을 키우며 출입처를 커버하고 회사의 요구사항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아이가 어려 일상에 '변수' 천지인 지금은 더 그렇다.


그나마 출입처가 조용할 땐 아이와 통화라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혹은 유치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혹여나 생긴 아이의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출입처에 일이 빵빵 터지면 사정은 '최악'이 된다.


밤샘 야근도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심신의 '제약'이다. 그 날 밤을 꼴딱 하루종일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데 갑자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서 자리를 낼름 비울 수도, 누군가 대타를 세울 수도 없다. 정말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선 안되는 일(상을 당했다거나, 혹은 내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거나 하는)이 생기지 않는 한 난 밤새 회사를 지켜야 한다.


아픈 아이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왜 난 '기자'이면서 '엄마'이기 이리도 어려운 걸까. 왜 우리나라는 '워킹맘'에서 '워킹'에 무게중심을 두는 삶을 강요하는 걸까. 그 직종이 무엇이든 아직까지 '맘'보다는 '워킹'이 중요한 세상이다.


"그럼 일을 관두고 애를 보면 되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일을 사랑한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기자'가 되었고, 최선을 다해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왜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내 꿈을 버리고 '엄마'가 되어야 하나. 꿈과 엄마는 왜 양립할 수 없나.


쉽지 않지만, 포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 엄마가 기자라는 걸, 우리 엄마가 이런 기사를 썼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겨줄 그 날을 반드시 맞이할 것이다. 아직 어린 우리 딸은 "엄마 직업이 뭐 하는 건지 알아?"라고 물으면 "응! 기사 쓰고 보도하고 TV에 나와서 사람들한테 오늘 있었던 일도 알려주는 사람이잖아"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이, 그 날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해준다는 걸 우리 딸은 알까.


내일은 약빨(?)이 좀 잘 들어서 첫째 아픈게 싹 다 나았음 좋겠다. 그러면 최근 딸과 하려고 사놓은 홈베이킹 재료를 잔뜩 깔아놓고 빵도 만들고, 쿠키도 만들며 신나게 놀아줄텐데. '기자' 말고 '엄마'로 하루 종일 함께해줄 수 있는 내일이 있으니, 오늘도 힘을 내서 밤사이 사건사고 잘 챙겨놔야겠다.


조용한 밤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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