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똑같은 구두만 신었다.

워킹맘 기자의 삶

by 스위트랜드

새벽 6시, 잠이 없는 3살 아들은 이미 깨서 내 침대로 달려와 칭얼대고 있었다. 이미 30여 분 전 출근한 남편을 찾는 것이었다.


"아빠, 아빠! 아빠아!!!!!!!!!"

"아빠는 출근하셨어. 이미 회사에 가신 거야. 조금만 더 자자."

"아니야. 아빠!!!!!!!!!!!! 아앙~~~~~~~~"


어젯밤 보고 싶던 책을 읽다 자느라 12시를 넘겨 잠든 게 순간 후회되었다. 안 그랬으면 조금은 맑은 정신으로 아들의 땡깡을 잘 받아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못난 어미는 아들의 칭얼거림에도 눈이 떠지지 않았다.


결국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끌어 일으켜 아들을 안아 들었다. 거실로 나와 토닥토닥- 등을 쓸어내리니 악을 쓰고 울던 목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그리더니 내 품에서 폴짝 뛰어내려 좋아하는 숫자 책을 집어 들고는 놀이방으로 갔다.


냉장고로 걸어가 커피를 꺼내 들었다. 컵커피는 내 육아 동지 중 하나인데, 스타벅* 스키니 라테는 거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 몽롱한 아침 정신을 번쩍 깨게 만들어주는 달콤함이 목을 타고 흘러들었다. 꿀꺽꿀꺽 삼켜나가자 채 몇 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빨대는 빈 통을 빨아대고 있었다.


커튼을 열어젖혔다. 확실히 입추가 지나고 나니 아침은 좀 선선해졌다. 눈뜨자마자 틀던 에어컨을 두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사이 조금 늦게 아침잠이 깬 6살 딸이 거실 소파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우리 가족 모두의 아침 기상이 마무리된 것이다. 시계를 보니 6시 22분. 빠르다면 빠른 기상 시간이었다.


아침잠 없는 우리 집 아이들 덕에 아침잠 넘치는 나는 강제 기상에 시달리고 있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하루를 시작하던 나는 온데간데없다. 이제 눈을 뜨자마자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유산균을 타 먹이고, 홍삼과 배도라지를 챙겨 먹이고, 곧장 책을 두어 권 읽어준 뒤, 아침식사 준비에 돌입한다. 대충 아침이 준비되고 나면 친정엄마가 우리 집으로 넘어오시고, 난 곧장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거의 한 달간 똑같은 구두를 신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발장을 열어 '오늘은 이 옷에 어떤 구두가 어울릴까'를 궁리할 여유 따위가 워킹맘에겐 없는 것이었다.

옷은 바뀌어도, 신발은 늘 똑같았다.




문득, 좀 서글펐다. 난 왜 맨날 이 검은 구두만 신고 다녔나.


발이 길들여진 검은 구두는 일단 발이 편했다. 편한 구두는 직업 특성상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 내겐 중요한 업무 환경(?) 중 하나였다. 특히나 볼발이 워낙 넓어 구두를 잘못 신으면 하루 종일 발이 아파 고생하곤 했다. 아가씨 때는 그래도 아픔을 참고 예쁜 구두를 찾아신곤 했었지만, 애를 낳고 나서는 '편한 게 장땡'이었다. 애들이랑 외출이라도 했을 때 구두가 불편하면 온통 괴로움 투성이 외출이 되곤 했다.


그래서 그냥 습관적으로 신던 구두를 계속 신고 또 신었던 것 같다. 옷을 뭘 입든 검은 구두는 크게 튀지 않았다. 무난하게 어우러지는 구두는 한 달을 신어도 그다지 인지하기 어려웠고, 그렇게 난 계속 같은 구두만 주구장창 신게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또 똑같은 구두를 신는 게 왜 그리 싫던지 오늘은 절대 저 검은 구두를 신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역시나 정신없는 아침이었고, 역시나 걸어 다닐 일이 많은 하루일 게 틀림없었지만 난 결국 신발장을 열고 다른 구두를 찾아들었다. 남동생이 백화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생일선물로 사줬던 하얀 구두였다. 약간 굽이 있어 신었을 때 다리 라인이 예뻐지는 구두기도 했다. 몇 년 만에 꺼내 신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하얀 구두에 발을 구겨 넣었다.


구두 가죽에 살갗이 닿는 느낌이 까칠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을 나서자마자 난 바로 후회했다. 너무 불편했다. 가죽이 헛돌며 내 살갗을 쓸어내렸다. 서서히 빨개지는 내 발을 보며 '어쩌지' 잠시 고민했지만, 돌아가서 구두를 갈아 신고 오기에는 이미 출근 시간은 촉박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그냥 오늘 하루 잘 버텨보기로 다짐하며 길을 재촉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평소 단 한 번도 길다고 느끼지 않던 환승 거리가 그토록 멀게 느껴진 건 오늘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흘러나오는 이어폰 속 음악을 들으며 심적 안정을 취하고자 했지만, 이미 발가락 사이사이 고통이 밀려왔다.


어찌어찌 목적지 역에 내려 열심히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훅 따스한 바람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눈에 보이는 지하철역 바깥 풍경은 참으로 이질적이었다. 내 발은 퉁퉁 부어오르고, 내 머릿속은 그저 구두를 얼른 벗어버리고픈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하늘은 푸르렀고, 나무는 청량했다.


조금 마음에 드는 구두를 바꿔 신었을 뿐인데, 하루가 온통 고통이었다. 매일 같은 구두를 신으며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신나게 걸어 다니던 같은 길이 이토록 길고 힘들고 고통일 수가 없었다.


사람 사는 게 참 이렇다. 일상이 늘 똑같아 지루해 변화를 주고 싶어 찾은 일탈이 일상의 그리움을 불러온다.


그토록 계속 신어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던 검은 구두가 이토록 그리워질 수 없다. 예쁘다고 꺼내 신은 기쁨은 정말 잠시, 그냥 맨날 신던 구두 신을걸 하는 후회가 가득해진다.


결국 비싸게 산 구두를 꺾어 신고 하루를 버티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편한 슬리퍼 하나를 저렴하게 구입했다. 어차피 살 거 좀 진작 사서 바꿔 신을걸 하는 마지막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기쁘게 슬리퍼 값을 지불했다.


내일은 그냥 원래 신던 검은 구두를 다시 신어야겠다. 주말에 여유가 생기면 직접 상가에 나가 '예쁘고 발 편한' 구두를 골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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