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단 한 순간도 미안한 적은 없었다.

워킹맘 기자의 삶

by 스위트랜드

오늘은 주말근무를 하는 날이다.

토요일인데도 아침 일찍부터 눈을 뜬 6살 딸은 엄마에게 안기며 "오늘 회사가요?"부터 외친다.


"엄마가 오늘은 회사에 가는 날이야."

"그럼 오늘도 보도 해요?"

"그건 가봐야 알텐데, 오늘은 엄마가 좀 바쁠 것 같아"

"그럼 몇 시에 집에 오시는데요?"

"엄마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고 일찍 퇴근할게!"


확신할 수 없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딸의 질문에 대답을 늘어놓으면서 스을쩍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을 곁눈질했다.


오늘 두 꼬맹이 '독박육아'를 책임질 내 남자, 아침 메뉴를 고민하며 눈을 뜬 평범한 '기자의 남편'은 미소를 띄고 모녀지간의 애정행각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시리 가슴이 뭉클하다.


최근 호흡이 긴 기획 보도 하나를 준비하느라 당일치기 지방 출장에 주말 근무, 평일 오프날 출근까지 도맡아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남편도 회사에서 나름 능력을 인정받는(?) 일꾼인지라 엊그제 새벽 4시에 퇴근하고 잠깐 눈을 부치고는 또 출근하는 평일을 보낸 터였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 바쁜 남매는, 그래서 주말에 부모가 출근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매우 중차대한 팩트 체크의 요소로 삼는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가슴 속이 울컥하다. 평소엔 별 생각 없었는데, 오늘따라 문득 이 상황이 야속하다. 주말 아침밥조차 내 손으로 챙겨주지 못한 채 "아빠랑 국에 밥 말아서 잘 먹어야 해"라고 말하고 있는 현실이 좀 처량하다. 대한민국의 뉴스는 주말이라고 멈출 수 없고, 사건사고와 정치뉴스, 국제뉴스는 1분1초도 쉬지 않고 쏟아진다. 결국 누군가는 국민들에게 정보를 전해야하고, 그 일을 하겠다고 자처하는 게 바로 나다.


그래서 난 꾸준히 주말근무를 해야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에 비하면 근무 여건도 많이 좋아졌다. 불과 3~4년 전,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이 되기 전엔 주6일·주7일을 밥먹듯이 했고 '토일 출근'도 종종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비인간적인 근무환경은 많이 벗어났다. 첫째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을 때만 해도 하루 쉬는 주말에 1주일치 이유식을 반나절 만들고 나면 주말이 끝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에 비하면 아주 양반이다. 그래도 부족하다. 엄마가 늘 필요한 어린 내 아이들에겐 한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난 결코 단 한 순간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적은 없었다.

우리 딸은 종종 "엄마는 어렸을 때 커서 뭐가 되고 싶었어요?"하고 묻곤 한다. 유치원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배운 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원래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하고 물었다. 그러면 난 흔들림없이 "그럼. 엄마는 중학생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책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책을 읽고부터는 오로지 기자가 되고 싶었단다. 그리고 엄마는 열심히 노력해서 기자가 되었어. 꿈을 이룬거지. 엄마는 엄마의 일을 사랑해. 물론 우리 딸아들을 훠얼씬! 많이 사랑하지만!"이라고 대답해주고, 또 대답해준다.


우리 아들은 이제 겨우 3살인데도 퇴근하는 내게 "엄마, 오늘은 보도 했어요?"하고 묻는다. "보도가 뭔지 알아?"하고 물으면 "사람들에게 뉴스를 전하는거요!"라고 대답한다. 완벽한 개념을 이해하고 있진 않겠지만, 어렴풋이 엄마의 일을 알아주는게 기특하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우리 엄마는 보도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서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며 말씀을 전해주셨다. 어린 꼬맹이가 '보도'라는 표현을 쓰는게 너무 신기하시다며 학부모 듣기 좋은 말도 얹어주셨다. 듣기 좋은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뿌듯했다.


가끔 취재현장에 있는 내가 사진기자들이 담아낸 프레임 속에 담겨 신문에 실릴 때가 있다. 어린 남매는 그런 엄마를 찾고 좋아라한다. 아빠와 함께 아침이면 모여앉아 신문을 보며 오늘은 엄마가 있나,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다보면 딸은 다른 기사들을 함께 접하고 아들은 누나가 읽어주는 신문기사 내용을 찬찬히 듣고 있다. 이런 풍경들이 뿌듯하고 기쁘다.



난 기자이지 않은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다. 퇴근 후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들에게 꼭 책 2권씩을 읽어주고, 아이들이 하고파 하는 놀이를 해준다. 애들이 잠들고 나서 집안일을 하느라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지만, 그건 그냥 내가 감수할 일이라고 여긴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무얼 하고 놀지 평일 틈틈이 고민한다.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베이킹에 취미를 들여 머핀 굽기, 식빵 만들기 등을 유튜브로 열심히 공부하기도 한다. 과자집 만들기 키트를 사서 열심히 만들 때도 있다. 최근 티니핑에 빠진 우리 딸을 위해 티니핑 색칠공부용 그림을 열심히 그려주기도 하고, 자동차 러버 아들을 위해 트럭, 버스, 지게차 등 가리지 않고 그리고 또 그려주는 날도 허다하다. 늘 목욕을 하며 아이들 육아와 관련한 유튜브 전문가 동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하고 평일 쉬는날에는 아이들의 사회생활을 위해 힘들어도 동네 친구들을 초대하고 엄마들과 교육 정보를 공유한다.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난 결코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아니, 미안해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건 좀 다른 문제다.

순간순간 '울컥' 치솟는 아픈 마음은 워킹맘에겐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울컥 아픈 마음이 치솟은 날 말이다.


눈치 빠른 우리 딸, 그런 엄마를 금새 알아챈다. 슬며시 엄마 가방에서 무언가를 가져다 목에 걸더니 환하게 웃으며 자기 얼굴에 갖다댄다. 커다란 내 사진이 가운데 박혀있는, '엄마의 출입증' 목걸이다.


"엄마, 엄마 닮아서 예쁘죠?"

"그러네, 우리 딸 엄마 닮아서 너무 예쁘네~"

"히히.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삐죽삐죽 가슴에 솟아올랐던 아픔이 순간 뭉글뭉글해지며 동글동글 모나지 않은 감정으로 변한다.


이 맛에 육아하지.

그럼그럼.


순간의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냉큼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찰칵' 사진에 담았다.

출근길 내내 저 한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그냥 봐도봐도 예쁘고, 또 봐도 예쁘다.


미세먼지 뿌연 하늘 아래 주말 출근길마저 아름다워보이게 만드는 우리 딸의 마법이 오늘 하루 날 지켜줄 것이다. 울컥 솟는 기분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그럴 땐 이 글과 위 사진을 꺼내보며 또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여야지. 그게 엄마고, 또 워킹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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