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둔 노트북은 훔쳐가지 않아도 자전거는 훔쳐가는 나라가 자랑할만한 일인지는 의문이 든다. 특별한 도덕심이 아니라, 노트북을 훔친 후 범죄 사실이 밝혀졌을 때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너무나 크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흔히 말하는 '멍석말이'와 '낙인'은 사회적 압력이 강한 사회에서 발생하기 쉬운 일이다. 그동안 받아왔던 편견을 벗어나기 위해 MBTI가 대유행인 것 아닐까(또 다른 낙인이기도 하지만)?
여자아이를 여러 명의 남자아이들이 괴롭힌 적이 있었다.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길을 막거나 놀리는 짓궂은 장난을 계속했다고 한다. 피해학생의 부모가 상대 부모님에게 부탁을 하고, 가해학생들에게 좋게 타일러도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되어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학교에서 열리게 되었다.
나는 가해학생들이 진술하기 전에 잠시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남자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 저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데 이제 될 수 없는 건가요? 학교폭력 했다고 생활부에 적히면 야구 배우는 학교에 진학을 못 하는데 너무 무서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미칠 듯이 치밀어 올랐다. 간신히 꾹 참고 '네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뉘우친다는 모습을 보이면 그 정도의 처벌은 받지 않을 거다'라고 했지만 그 후에 어떤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꽤 긴 시간 동안 다른 사건과 모습의 고민으로 찾아왔다.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서 낙인은 꽤 효과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학교폭력을 다루는 사회의 시선도 분명한 처벌인 것 같다.
인간행동의 ABC라는 책은 사람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행동의 원인이나 결과를 바꾸라고 한다. 낙인은 행동의 결과를 바꾸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낙인이론이 교육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행동의 원인을 바꿔야 한다. 폭력적인 행동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남에게도 소중하고, 남이 느끼는 감정을 나도 공감할 수 있기 위해 대화와 소통을 해야 한다. 그런 연습을 하는 공간이 학교고, 중재자가 교사다.
다른 사람, 다른 생명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어려울 수는 있지만 계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교사로서 지향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된다. '쉬운 미움보다 어려운 사랑을'이라는 글도 있지 않은가?
* 공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인지적 공감: 다른 사람을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
정서적 공감: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같이 느끼는 능력
정서적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공감을 학습하며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