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 암이라는얘기를 듣고 대학병원으로 가서 골수검사를 한 뒤 최종적으로 외투세포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최종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제 밝힐때가 되어 아이들에게 얘기했고, 가장 어려웠던 부모님에게까지 알렸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카톡으로 간단히 내용을 전했다. 가까운 친구들중에서는 첫 사례이다 보니 이런 저런 위로와 걱정을 받으며 나도 마음을 다시 먹었다.
나는 하루 아침에 암환자가 되었는데, 나를 제외한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도 있었다. 바로 얼마전까지 나도 저들 속에서 똑같이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7년동안 다니던 직장을 퇴사했다. 최소 8개월, 혹은 그 이상도 기약없이 걸릴 수 있었기에 병가를 낼수도 없었다.
사실 병가를 내고 쉬면서 치료후 건강해진 다음에 다시 다닐만큼 좋은 조건의 회사도 아니였고, 당장 기약없는 치료를 들어가며 대비도 해야겠기에 퇴직금도 필요했다. 예전에는 이런 저런 보험도 많이 들었었는데 그동안 먹고 살기 힘들다보니 다 해약하고 실손보험 하나만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암이야기를 듣고 그때서야 보험 생각이 났다. 워낙 오래전이긴 하지만 힘들더라도 유지는 할걸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당시 험난하게 세상을 버텨내야 했기 때문에 보험은 유지할수가 없었다. 그마나 나중에라도 실손보험들어서 지금까지 이상없이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라도 다행이라고 여겨야했다.
정말 막막하긴 했다. 그리 넉넉하게 저축같은걸 여유있게 하며 살아올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내가 일을 해야만 했고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세상에 암환자가 얼마나 많고 암이 얼마나 흔한 질병인데 나는 전혀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살아 왔을까?
아마도 가까운 친구나 친척 지인중에 암환자가 없어서 그랬을수도 있다. 그저 남의 이야기려니,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려니 여기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내 이야기가 되었다. 그동안 멀쩡한 내 몸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유일한 재산인 몸이 멀쩡하지 않게 되어버렸으니 이렇게 막막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아내도 같이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졸지에 두 명 모두 실업자가 되었다. 사실 내가 거동이 힘들거나 꼭 간병인이 필요할만큼 힘든 상황은 아니었는데 나도 아내도 다른 생각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내도 내가 암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로 입원하는데 멀쩡히 직장을 다닐 수는 없었으리라. 조금만 더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했다면 생각을 더 해봤겠지만 그당시로서는 정말 아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내도 당연히 나를 따라 간병하러 같이 들어갈 생각이었고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내의 도움이 필요했다.
실업급여 생각도 했기 때문에 일단은 치료부터 잘 받자는 생각이 최우선이었다. 대략 알아보니 암은 산정특례로 치료비의 5%만 부담하면 된다고 들었다. 물론 비급여인 부분은 환자가 부담해야 하지만, 실손보험에서 그 부분은 커버가 된다고 해서 사실 치룝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산정특례는 중대한 질병에 걸렸을때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치료비의 일부만 환자가 내면 되는 제도이다. 혈액암같은 경우는 당연히 해당되는 대상이었고, 담당교수님께서도 바로 처리해 줘서 그 부분은 수월하게 넘어갔다.
실제 나중에 퇴원할때 내역서 나오면 어마어마했다. 몇백원되는 항목과 치료비가 쭉 써있는데 본인 부담은 몇십만원 수준이었다. 의료보험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항암치료 받는 내내 감사하며 받았다.
담당교수님의 말을 듣고 계속 인터넷 검색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지만 아예 모르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이런 저런 내용들과 항암치료에 대해서도 알아봤는데 , 알아볼수록 겁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더라.
혈액암의 경우 최종적으로 조혈모세포이식이란 단계까지 가는데 그 과정도 무척이나 힘들다고 하길래 막연한 두려움을 가져야 했다. 아직 내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아야 하는지, 안받아도 되는지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입원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