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1차가 끝나고 집에서 쉬는 3주의 시간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병원에 가 외래 진료를 한다. 진료 2시간전에 가서 피검사를 하고 담당교수님을 만난다. 입원해 있을 동안은 케모포트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피검사도 포트를 통해 쉽게 하지만, 외래시에는 포트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팔에 주사를 통해 피검사를 한다.
매번 피검사를 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의학기술이 이렇게 발전하는대로 꼭 이렇게 주사바늘을 찔러서 검사를 해야만 할까라는 실없는 생각을 한다. 머리카락 한 올만 뽑아서 검사해도 모든 데이터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피검사는 금방 끝나지만 주사하는 간호사의 숙련도에 따라 아픔의 경중이 가려지는 듯 하다. 어떨땐 살짝 따금하기만 말고, 어쩔때는 눈살이 찌푸려질정도로 아프기도 하다. 매번 맞기 전에는 제알 주사 안아프게 놓는 간호사가 당첨되기를 바라고는 한다.
피검사 결과가 나올때쯤 가서 진료접수를 한다. 처음에는 혈액종양내과라느 이름만 봐도 낯설고 무섭고했는데 이제 얼마나 되었다고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대기실에 앉아 있을때도 보통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다. 거의 내가 막내나 다름없는 셈이다. 대개 늦은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왜 발병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유전자의 변형으로 인한 교통사고 같은 거라는데 맞는 말 같다. 누구한테도 일어날수 있는 일이고 나한테도 일어날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납득이 가진 않는다.
담당교수를 만나 얘기했다. 집에 가서 밥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살도 안찌고 똑같다고. 그랬더니 교수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한다. 밥을 열심히 먹는다구요? 밥을 열심히 먹는다는 표현은 처음 들어본다고 하신단다.
결론은 뭘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것 저것 고용량 비타민 얘기도 물어보곤 했지만 그런게 지금이 상황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하신다. 물론 먹히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먹은건 아니지만 되려 열심히 먹고 체력회복하려고 한 내가 졸지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교수님 얘기는 너무 애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라고 하신다. 이제 항암치료 1차를 마친 시점에 뭔가를 열심히 해서 몸을 축내지 말란 얘기다. 교수님 입장에서 얼마나 많은 환자를 보았겠는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말고 교수님 말을 듣기로 했다.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해쓰지 말것. 자연스럽게 행동할 것. 그래서 몸에 좋다는 걸 억지로 챙겨먹거나 무리해서 먹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건강에 좋다는 견과류, 토마토, 채소, 두유등은 계속해서 먹었고 라면, 떡볶이, 튀김, 과자등은 거의 안 먹었다. 산책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했다.
남양주에 사시는 부모님이 일주일에 한번씩은 오셨는데 그때마다 몸에 좋다고 하는 것들을 사오거나 싸가지고 오셨다. 대추말린거, 표고버섯 말린거, 추어탕, 장어구이, 흑염소탕, 산삼분말등 종류도 다양했고 양도 많았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가급적 먹어봐서 이상이 없었던 음식을 주로 먹으라고 했고, 날음식은 피하라고 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좋다는 얘기를 듣고 가져오신 것들을 마구 입에 넣을수는 없어 조심했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내가 이상이 없는 게 좋은거란 생각에 고맙게 받고 꺼림직한 건 먹을수가 없었다. 흑염소탕은 지금까지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피했다.
그외 음식들은 잘 먹으려고 노력했다. 인터넷에 보면 암환자에게 좋은 음식에 대한 정보가 수도 없이 나온다. 하지만 일단은 체력을 유지하는게 급선무이기 때문에 입에 맞는 건 잘먹으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래서 식단에 너무 연연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먹었다. 단 밥은 백미대신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주로 먹었고 햄, 소세지등 가공육은 피했다. 두부, 콩, 계란, 시금치, 브로콜리, 당근, 양배추등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첫번째 외래 진료를 마치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머리가 겉잡을수 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베개에 머리가 한웅큼이나 빠져 있었고, 머리를 감고나면 세면대가 까맣게 보일 정도가 빠지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드디어 올것이 왔다 싶었다.
미리 대비해 비니도 사놓고 했지만, 이젠 누가봐도 환자라고 보일 몰골이 될 생각에 심란했다. 이제 빠지기 시작한 머리이니 이젠 겉잡을수 없을 것 같았고, 미련을 가지고 있어봤자 답은 없었다. 난생 처음 비니를 눌러 쓰고 집 가까운 블루클럽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