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삭발하고, 이제는 완전한 환자의 모습이 되었다

by 하루진

항암치료 1차를 마치고 퇴원후 집에서 쉬던중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에 띄일 정도로 빠지던 머리카락이 날이 지날수록 우수수 빠지는게 눈에 보였다. 아직까지는 밖에 다녀도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머리를 밀고 다니면 누가봐도 환자의 모습이어서 가급적 늦게 머리를 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머리를 감을때 막상 빠진 머리카락으로 까맣게 덮여진 세면대를 보자 더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미리 사놓은 비니를 눌러쓰고 집 앞 블루클럽에 갔다. 오랫동안 다니던 곳인데 삭발을 하러는 처음 가본다. 군대 갈때 머리를 짧게 민 이후로는 머리를 짧게 잘라본 적이 없어 이래 저래 심란한 느낌이었다.


30대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 미용사분이 말씀하셨다.


"비니를 쓰고 오시면 샴푸를 먼저 하셔야 됩니다."


"삭발을 할 거라서요"


"아, 그럼 괜찮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비니를 벗고 예전에 비해 한층 머리숱이 가벼워진채 의자에 앉았다. 미용사분이 암이냐고 물어보더니 자신도 10년전에 암에 걸려서 머리를 다 밀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 나서 머리도 풍성해졌고 괜찮다고 한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로를 받은 느낌이라 괜시리 울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삭발은 금방 끝났다. 가위는 사용하지도 않았고 바리깡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하자 금새 머리가 시원해졌다. 거울을 보니 그 모습이 그리 이상해보이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내 두상이 괜찮았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제 머리도 시원해졌고 홀가분해졌다. 더이상 매일같이 점점 더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속상해 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전에 유퀴즈에 유방암으로 투병중이었던 개그우먼 박미선님이 나온 걸 봤다. 마찬가지로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 빠지는 것 때문에 아예 미리 삭발을 하거는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고 한다. 나도 프로필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겨우 항암치료1차를 마친 후였기에 앞으로의 여정이 막막해서 프로필 사진같은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머리를 시원하게 밀고 비니를 쓰고 집에 가니 아내가 보고 웃기다며 신나게 웃는다. 나도 머리 삭발한 정도로 우울해하거나 속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같이 어울리지 않으며 웃고 넘겼다.


집에 와서 있으면서는 맨들맨들해진 내 머리가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몇번이고 손으로 만졌다. 이제 중년의 50대 초반 아저씨인데도 이렇게 심란하니 나보다 훨씬 외모가 소중한 젊은 분들에게는 정말 속상할것 같다. 특히 여성분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겠지. 나중에 치료가 잘되고 항암치료를 마치면 빠졌던 머리카락도 다시 난다고 하니 언젠가는 다시 탐스런(?!) 나의 머리카락을 다시 볼날이 있으리라 본다.


아뭏든 이제 집앞에 가까운 곳에 나가더래도 비니를 꼭 챙겨야 한다. 이제 우리가 암환자, 백혈병 환자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다. 창백하고 힘없는 얼굴에 머리는 삭발하고 비니나 털모자를 눌러쓴 모습. 예전에는 드라마나 영화에 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리는 모습이 자주 나왔었다.


예전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 하는게 아니야' 대사와 눈밭에서 모습이 유명한 영화 '러브스토리' 의 여자 주인공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가. 툭하면 극중에서 시한부인 모습이 나오면 거의 백혈병이었다. 그나마 점차 치료가 잘되고 생존률이 높아지면서 더이상 백혈병이 불치병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문것 같다.


나는 처음에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서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얘기를 듣고 최종적으로 외투세포 림프종 진단을 받았지만 백혈병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차라리 낯선 외투세포 림프종이라는 병명이 예전 불치병의 대명사인 백혈병보다는 아이들이나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덜 놀라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친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는 부모님께 말씀드린후 카톡으로 얘기를 했는데 그 당시에도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었고, 만약 백혈병이라고 했다면 주위의 사람들도 더 놀랬으리라.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혈액암중 림프종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다. 외투세포 림프종처럼 처음 병명을 들어보는 것들도 많았다.


이제 머리도 완전히 밀었고 집에서 쉬는 3주의 시간도 금새 지나가고 있었다. 며칠후에는 2차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을 해야 하고 , 이번에는 짝수 차수에 맞아야 하는 항암제를 처음 맞는다. 이번에는 1차때처럼 부작용 없이 넘어가기만을 바래본다. 그런데 이런 바램이 무색하게 이번에는 더욱 큰 부작용으로 고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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