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항암치료, 더욱 심한 부작용이 닥쳐오다

by 하루진

2차 항암치료는 예정대로 진행중이다. 이번에는 1차때처럼 항암제를 맞자 마자 나타나는 부작용은 다행이 없었다. 이번에는 2,4,6,8차때 맞는 항암제를 처음 맞게 된다. 1차때와 마찬가지로 기본검사를 마친후 이상이 없으면 항암치료가 시작된다. 침대에는 항암스케줄표가 걸린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많이 들려다보고 낯선 항암제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그만 뒀다.


약이 한 두 개도 아니었고, 검색해보면 이런 저런 특징을 가진 약이라는 것과 이런 저런 부작용에 대한 얘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너무 대책없는 생각일수도 있지만, 담담교수님께서 알아서 잘 처방해 주셨겠지 생각했다. 처음에 검색하고 아는척 했다가 , 요즘엔 이게 문제라도 혼났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만약 보호자로 있었다면 간병하는 시간에 샅샅히 찾아보고 회진온 의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아는 체를 했겠지만, 당사자가 되다 보니 그냥 만사가 귀찮았고 하루 빨리 낫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항암제가 있다. 첫번째는 1차 항암치료때 처음으로 맞는 리툭시맙이란 약이었다. 가장 먼저 맞기도 했고, 가장 처음 강렬할 부작용을 갖다 준 약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맞는 항암제중에 MTX 라는 약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주로 여성들 자궁외임신 치료약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물론 혈액암 치료제로도 사용이 된다.


이 MTX 를 잊지 못하는 데는 이거를 맞고 가장 심한 부작용으로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맞을 당시에는 고열이나 오한은 없었지만, 맞고 난 뒤에 서서히 언어장애와 다리마비로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지금이야 지난 일이니 담담히 기억을 되살려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MTX 항암제의 경우 척수강 안으로 투여하면, 신경독성을 일으킬 수 있는데 언어곤란, 팔 다리 마비, 경련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증상은 치료후 6일 이내에 나타나 48~72시간안에 사라진다고 하는데 내가 거기에 딱 해딩되었다.


항암제를 맞고 서서히 말할때 조금씩 말이 꼬이는 증상이 나타났고 다리에 점점 힘이 없어져 갔다. 증상이 나타날땐 심하진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조금씩 심해져 갔다. 2차 항암치료도 어느덧 마치고 퇴워날이 가까워졌는데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다.


피검사 수치도 좋지 않았고 말이 꼬이는 경우도 많아졌다. 아직 걸어다닐 수는 있었지만 불안 불안했다. 교수님은 퇴원날 오전에 검사한 피수치 성적이 좋지 않았고 내 상태가 별로 였기 때문에 계속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힘들어도 오로지 집에 갈 날만 기다리며 버텨왔기 때문에 퇴원을 고집했다.


이번에도 1차때와 마찬가지로 3,4일이 지날때쯤부터 울렁거림으로 밥먹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번에는 대비를 한다고 집에서 반찬도 싸가고 이런 저런 부식들과 컵라면등으로 겨우 버텼는데 입원을 더 하라니 끔찍했다. 이 당시에는 그냥 집에만 가서 있으면 다 좋아질것 같았다.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사 말을 안듣고 고집을 피웠던 것 같다. 이성적으로는 수치도 안좋고 컨디션도 최악이었지만 정말 집에 가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었다. 결국 담당교수님도 못마땅해 했지만 내가 퇴원하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마지못해 퇴원하라고 했고, 이상 있을시 응급실을 통해 오라고 했다.


그때는 집에 간다는 사실에 기쁘기만 했다. 마치 전역일에 전쟁으로 전역 연기를 전달받은 군인의 심정이었다가 다시 전역을 명 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랄까. 사실 구름위를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표현에 어패가 있지만, 그만큼 다리에 힘이 풀려 옆에 아내가 없었으면 퇴원도 못할뻔 했다. 겨우 걷고 부축을 받으며 내려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하지만 안 좋은 선택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도 겨우 걸어갔다. 집에는 2차 항암치료 마치고 퇴원한다는 소식에 부모님이 또 이것 저것 잔뜩 싸가지고 집에 와서 기다리고 계셨고, 집에 들아가자 마자 소파에 가서 앉어 겨우 앉다시피 했다.


언어 곤란 상태는 계속 되었는데 얘기는 멀쩡히 하지만 발음이 뭉개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급적 말을 천천히 하려고 했지만 스스로 느끼기에도 발음이 계속 꼬이는 경우가 많았다. 다리 마비 증세는 점점 심해져서 결국 화장실에 갈때는 기어서 갔고 다시 와서 의자나 소파에 와서 앉았다.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몸으로 겪게 되니 막막했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있을때는 멀쩡하고 괜찮았는데, 걸으려고 하면 다리에 힘이 안들아가서 걸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오르고 내리는 것도 힘들 것 같아 아내가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주었다. 걔속 소파에 앉아 있다가 내려와서 밥을 먹고 그 자리에서 누워서 잠을 잤다.


다행이 1차때처럼 퇴원하니 울렁거림은 사라져서 집에서 밥은 잘 먹었지만, 제대로 걷지를 못하니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막연히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 부작용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기에는 나도 아내도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월요일테 퇴원후 계속 버티다가 수요일 아침을 먹고 병원에 다시 가기로 했다. 예약이 안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퇴원때 얘기들었듯이 응급실로 가야 했다.


이번엔 또 난생 처음 응급실 구경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운이 좋게도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한번도 응급실에 갈만한 상황을 만나지 못했기에 이번 응급실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퇴원한지 삼일만에 응급실을 통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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