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지만, 부작용이 심각했다. 병원에서 퇴원할때쯤에도 수치가 안좋았지만 오로지 집에만 가고 싶다는 마음떄문에 의사의 권유에도 퇴원을 고집했지만, 집에서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리 마비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말을 할때도 언어 곤란 증세로 말이 꼬여서 발음이 뭉개지는 경우도 많아졌다.
결국, 월요일 퇴원후 집에서 있다가 수요일 오전에 다시 병원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외래는 예약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응급실을 통해 가야 했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는 간단히 짐을 싸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앞서 얘기했지만 아이 둘을 키울때도 지금까지 응급실 신세를 질 일이 없었는데 내가 처음으로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 앞에서 내렸다. 이때쯤은 다리에 힘이 없어 정말 한 발짝도 제대로 걷기 힘들었다. 응급실 직원이 급하게 휠페어를 가져다 줘서 난생 처음 휠체어도 타게 되었다. 아내가 휠체어를 밀고 응급실에 접수를 했다. 응급실에서도 대기를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30분정도 대기를 하다 응급실 진료를 받게 되었다. 들어가서는 증상을 말했고 곧 이런 저런 검사가 시작되었다. 내가 걷지를 못한다고 하자 MRI 도 찍었도 CT 도 찍고 검사란 검사는 다 했던 것 같다. 제대로 걷지를 못했지만 당연히 부작용이라고 생각햇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거라고 생각했기에 많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단순히 항암 부작용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라고 그냥 기다리라고 할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고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응급실은 정말 분주했다. 입원병동에서의 조용했던 병원 환경과는 다르게 정신이 없었다. 아내는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응급실 내 대기공간에서 침대에 누워 기다렸다.
그렇게 누워있던 중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간호사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 얘기하려고 했다. 간호사한테 얘기해서 휠체어를 태워달라고 하려 했다. 어떻게든 화장실까지만 가면 기어서라도 일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간호사가 오더니 소변줄을 연결한다고 한다.
잠깐 당황했다. 소변줄을 연결한다구요? 간호사는 간단하게 그렇다고 대답후 거침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난 정확히는 모르지만 소변줄이란게 있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소변을 처리하기 위해 무슨 시술같은 것을 하는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소변이 나오는 곳에 튜브를 꽃아 주머니에 연결해 화장실에 가지 않고도 볼일을 해결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사실, 이때 가장 당황했고 자존감이 완전 떨어졌다. 소변줄을 연결하는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간호사에 의해 이뤄졌는데 정말 아프기도 했고 정신이 없었다. 수치스럽기도 했고 아프고 소변은 계속 마렵고 아내를 불러 달라고 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소변줄을 다시 빼고 볼일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순전히 나의 바램일 뿐이었고 간호사는 소변줄을 연결하고 가버렸다. 소변줄 역시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고 느낌이 너무 불쾌했다. 가장 민감한 부위에 이물감과 아픔이 느껴졌고 소변은 계속해서 마려운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줄 몰랐다.
소변이 너무 마려워 화장실에서처럼 힘을 줘봤지만 누워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본능이 시켜서인지 시원한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소변은 그 상탸에서 계속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소변을 봤다는 자각은 전혀 없는데 소변 주머니는 계속 채워지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고 복잡 미묘한 상태였다.
응급실에 그러고 있는데 혈액종양내과 담당교수님이 응급실로 나를 보러 왔다. 왠지 반가웠다. 교수님 얘기를 듣지 않고 퇴원을 고집했다 며칠만에 이렇게 응급실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면목도 없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응급실 담당 의사와 얘기하고 나는 다시 혈액종양내과로 가서 입원이 결정되었다.
퇴원한지 삼일만에 다시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