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실에 들어가다, 또 다른 입원생활

by 하루진

원래 일정대로라면 2차 항암치료후 퇴원하여 집에 있을 시간이지만, 퇴원한지 이틀만에 응급실로 들어온뒤에 다시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2차 항암치료 부작용이 심해 걷지 못해 소변줄을 차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피 검사 수치도 계속해서 좋지 않아 수혈팩을 맞고 수액을 번갈아 맞았다.


다시 입원한지 며칠이나 되었을까 계속해서 퍼 검사 수치가 올라가지 않자 교수님이 무균실로 가야 될것 같다고 했다. 앞서 얘기했던 면역력의 중요 지표인 호중구 수치가 아예 0 이었기 때문이다. 적혈수 수치도 안좋아 수혈도 계속 했는데, 호중구 수치도 올라가지 않아 촉진제 주사를 맞았음에도 호중구 수치가 0 이었다.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무균실에는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어 아내는 어쩔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입원실에서 퇴원할때와 동일하게 짐을 싼뒤에 내가 쓸것만 챙겨서 무균실로 갔다. 아내는 수치가 너무 안 좋아지는 나를 무균실에 넣고 혼자 가기가 마음이 아픈지 연신 눈물을 훔친다.


옆에서 간호사가 무균실로 가는 것도 치료를 위해 가는 것이니 진정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균실은 일반 병실과는 다르기 때문에 여러가지 준비물과 주의사항이 있었다. 내가 입원실에서 쓰던 물품도 소독을 거쳐 들어와야 하고 먹을 것도 함부로 먹으면 안된다.


이때쯤 그나마 다리에 힘이 돌아와 더이상 소변줄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었고 걸을수도 있어 다행이었다. 소변줄을 떼고 걸을수 있게 되자마자 무균실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무균실은 같은 층 끝에 있었는데 조용했다. 남자 3인실 한 곳 , 여자 3인실 한 곳, 1인실 3곳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상주간호사는 한 명이 있었고 회진하러 오는 의사와 칭소원들은 들어올때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에 비닐 가운까지 중무장한 후에 들어온다. 무균실에는 24시간 항균 필터가 가동되고 있어 일반병동에 비해 소음은 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신 북적북적한 6인실에 있다가 3인실에 오고 보호자들이 없으니 평화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나 혼자서 지낼 준비를 하며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가야 하는데 차마 발걸음이 안떨어진다고 무균실에 같이 들어가면 안되냐고 운다. 아내는 아마 이때 가장 많이 운 것 같다. 내가 암 선고를 받고 지금까지 검사, 외래, 입원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는데 이제 강제로 떨어져야 하는 신세가 되어 더욱 서러웠다 보다.


아마 나도 같은 입장이었다면 발걸음이 안 떨어졌을것 같다. 몸 상태가 안좋아져서 결국 무균실까지 들어가게 되었으니 , 강제로 집에 가야 하는 아내 심정이 이해가 갔다.. 무균실에서 환자는 무균실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무균실 안에서만 활동해야 한다. 워낙 컨디션이 안 좋아 산책을 나가기도 힘들었지만 답답하더라도 밖으로는 나가지를 못한다. 그래도 밥을 먹고서는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무균실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긴 했다.


내가 입원했던 3인실에는 미리 와있었던 남자 분이 있었다. 연배는 나보다 조금 더 있어 보였는데 어디가 안 좋은지 식사는 전혀 못하고 있었다. 무균실에서는 일반 병실에서 사용하는 커텐도 감염의 우려 때문에 사용 안하고 그냥 비닐커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각 침대끼리는 훤히 다 보인다. 프라이버시라는게 전혀 없다. 이런 환경이니 당연히 보호자는 같이 있기도 힘들고 있을 자리도 없다.


한편으로는 입원한 다음에 처음으로 주어진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어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도 보기 힘들어 혼자 조용히 있기는 좋았다. 병실은 좁았지만 화장실이 병실 안에 있었고 3인실에 한 자리는 비어있어 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균실에는 창문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어 활동적인 사람은 못견디게 답답할듯 하다. 다행이 나는 활동적이기 보다는 정적인걸 좋아해서 견디기 힘든건 아니었다. 다만 , 수치가 안 좋아서 언제쯤 무균실에서 나가게 될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울렁거림과 메스꺼움 증세는 계속되어 밥은 아예 못 먹었다. 그나마 누룽지는 조금 먹을 수 있었는데 식사를 누룽지로 요청하는 것도 가능해서 모든 식사를 누룽지로 요청을 했다. 무균실에서 식사는 감염을 막기 위해 모든 식기가 스테인레스이고 모든 메뉴가 익힌 메뉴들만 나온다. 김치도 볶아서 익힌 김치가 나오고 다른 모든 반찬도 익혀서 나온다. 그런데 식욕이 거의 없어 식사가 나오면 누룽지만 몇 숟갈 떠 먹고는 말았다.


아내는 내가 밥을 잘 못먹으니 억지라도 먹으라며 다 먹은 사진을 보내라고 했으나 다 먹은 사진은 한 번도 보내지 못했다. 활동량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배도 안 고팠고 계속 기운이 없었다. 거의 침대에 누워 있는게 대부분이었다. 침대를 조금 세워 노트북을 하기도 했으나 자세가 불편해 오래는 할 수 없었다. 병원 침대에 고정해놓을 수 있는 거치대를 항상 가지고 다녔는데 거기에 핸드폰이나 작은 태블릿을 끼워 놓고 영화를 보거나 애니를 봤다.


그러는 사이에도 피 검사 수치는 여전히 바닥이었다. 호중구 수치가 좋아져야 무균실을 나갈 희망이라도 가지는데 계속해서 0 이었다. 매일 호중구 촉진제 주사를 맞는데도 0 이었다. 간호사가 촉진제 주사 맞는다고 수치가 바로 올라가는게 아니고 한번에 오른다는 얘기를 듣고 매일 아침 간호사에게 새벽에 한 피검사 수치를 확인했는데 올라봐야 50이었다.


이래서는 계속 무균실에 있어야 하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교수님도 매일 회진을 오긴 했지만 계속해서 수치가 안 좋아지니 조금 기다리자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무균실에 들어온지도 벌써 일주일정도가 지났는데도 수치 변화가 없었다. 도대체 내 몸이 왜 이럴까 하고 정말 속상했다.


암에 걸리고서는 정말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특히나 이 혈액암이란 병은 도무지 발병원인을 짐작할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담배는 끊은지 20년이나 되었고 술을 자주 마시긴 했지만 혈액암의 원인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는 하지만 이 정도 스트레스도 안 받고 살 사람이 있을까 하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의 의지나 노력, 행동과는 전혀 상관없이 암은 찾아왔고 특히나 무균실에서의 내 몸 상태는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무균실 내 공간을 왔다 갔다 했고 아내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내는 내가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하루에 한 번씩 찾아왔다. 무균실에 와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무균실과바깥을 이어주는 문을 사이에 두고서 전화를 통해 얘기를 했다. 흔히 영화에서 보는 교도소 면회 장면과 흡사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얘기를 했으니 말이다.


내가 여기서 밥을 거의 못 먹으니 무균실에서 먹어도 되는 간식이나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기도 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서서 얘기해야 했기 때문에 2~30분정도 얘기 하고는 돌아가야 했다. 귀찮고 힘들게 자꾸 오지 말라고 하니까 집에 있는게 더 답답하다고 잠깐이라도 온다고 한다.


그렇게 생이별 아닌 생이별을 하며 무규실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 같았다. 사방이 다 하얀 공간이었고 시간의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밖은 여전이 똑같이 돌아가는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과연 언제까지 무균실에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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