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항암치료때 맞았던 항암제가 너무 독한지 도저히 이겨내지를 못했다. 고집을 부려 퇴원한 집에서 다리마비 증세가 와서 걷지도 못하고, 언어 곤란 증세로 말도 똑바로 못한채 응급실을 통해 다시 입원했다. 그러나 입원한뒤에도 상태는 게속해서 나빠져 결국은 무균실에 들어오고 말았다.
면역의 주요 지표인 호중구 수치가 계속 최저를 찍다 못해 0 였기 때문이다. 무균실에 보호자는 들어오지 못해 항상 투병생활을 같이 하던 아내와 떨어져 들어온지 1주일이 금새 지나가 버렸다. 무균실은 정말 조용했고 답답했고 똑같았다.
호중구 수치와 적혈구 수치등 모든 수치가 최저여서 컨디션도 무척이나 나빴다. 몸에 기운이 없었고 무기력해서 그냥 누워만 있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기에는 무균실은 최적의 환경이었다. 조용하고 번잡스럽지 않았으니....
매일같이 수혈팩을 맞고 호중구 촉진제 주사를 맞았다. 일반 병실에서와 동일하게 새벽이면 피검사를 하고 한 두 시간후면 결과가 나온다. 매일 기대를 하며 간호사에게 물어봤지만 수치는 오르지 않았다. 항상 회진 오는 교수님이 하는 말씀도 똑같았다. 이제 슬슬 수치가 오를때가 됐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정적인 걸 좋아해서 환자가 적성이라는 말을 들었던 나도 정말 답답해서 못견딜 지경이었다. 무균실에 들어와서 더욱 걱정이신 부모님에게 매일같이 전화해서 수치가 조금 좋아졌지만 아직은 나갈 정도는 아니라는 말을 여러가지 버전으로 돌려가며 말했다. 거의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오는 아내와는 계속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통화를 하며 짧은 만남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힘든건 계속해서 식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매끼 누룽지를 신청해서 오면 반찬은 거의 열어보지도 않고 누룽지만 몇 숟가락 떠먹었다. 그리고 허기가 느껴지면 아내에게 부탁해 받은 간식과 멸균우유를 먹었다. 식사량이 줄어드니 평생 없었던 변비도 생겼다. 거의 평생을 왕성한 장운동으로 매일 아침 배변을 필수코스로 삼았던 나인데 변비로 2~3일씩 화장실을 못갔다. 간호사에게 변비약을 달라고 했으나 식사량이 줄어서 그런 것이라며 약을 주지 않았다.
내가 있었던 무균실의 풍경이다. 밥을 먹고 답답하면 병실 밖을 나와 사진 끝에 보이는 옷장까지 왕복하며 걸어다녔다. 보이는 공간이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다. 침대가 답답하면 노트북을 들고와서 사진속에 보이는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하기도 했다.
어느덧 무균실에 들어온지도 거의 2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무균실에 갇혀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변함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종종 뒤늦게 소식을 접한 지인이나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 오기도 했는데 언제나 내 대답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사실 가자 안좋은 상태였지만 나 상태 안 좋다고 해봤자 달라질 일은 없었다. 그저 내일 아침이라도 기적처럼 수치가 올라 무균실에서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적은 조용히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