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외롭고 힘들었던 무균실에서 탈출하다

by 하루진

-독감에 걸려 며칠동안 고생했네요. 겨우 살만해져서 다시 글 올려봅니다.-


무균실에서의 시간은 정말 길었다. 처음에는 마치 중환자실을 가는 듯한 무거운 심정이었는데 막상 무균실은 번잡스러운 일반병실과 달리 조용하고 고요했다. 처음 며칠은 마치 휴가를 받은 것처럼 쉬었던 것 같다.


여전히 밥은 전혀 못먹고 매끼 누룽지만 조금씩 떠먹는 정도였지만 마치 1인실에 입원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제쯤 나간다는 기약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0 인 호중구 수치는 절망스러웠다.


처음엔 이제 슬슬 수치가 좋아질거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길어도 일주일이면 정상수치로 회복되어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덧 무균실에 들어온지 열흘이 지나고 2주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매일 매일이 똑같았다. 보호자도 없었고 회진오는 교수님과 전담간호사, 청소하시는 분만 매일 같이 다녀갈 뿐이었고 좁은 무균실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호중구 수치를 비롯한 모든 피검사 수치가 바닥이었기에 기운도 없었다. 기운이 있다고 해도 돌아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그냥 축축 늘어지기만 했다. 항암치료 2차만에 이렇게 부작용으로 브레이크가 걸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엉망인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원래 비교적 긍정적인 성격이었지만 암에 걸리고나서는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비관적일때가 많았다. 대표적인게 무균실에 있을때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에 빠지기만 했다.


그러던 중 조금씩 몸에 기운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호중구 수치가 좋아졌나 싶어서 확인해봤지만 수치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0 의 행진에서는 벗어났지만 50, 80 이렇게 찔끔찔끔 오르기만 했다.


그렇게 2주를 꽉 채어가던 중 여느때처럼 간호사에게 새벽에 한 피검사 수치를 확인해봤는데 호중구 수치가 갑자기 1200 으로 확 뛰었다. 어제까지도 80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확 오른 것이다. 간호사가 계속 촉진제 맞아도 늦게 오르거나 한번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거의 정상수치에 근접하게 올라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무균실 들어온지 2주만에 겨우 좋은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조금 설레이는 기분으로 회진오는 교수님을 기다렸다. 9시가 조금 넘어 온 교수님이 검사 수치를 보고는 바로 퇴원하라고 하신다. 와, 그때의 희열과 기쁨이란! 마치 완치 되었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좋았다. 수치가 처음으로 오른 것이기 때문에 바로 퇴원할지는 몰랐기에 갑자기 들은 교수님의 퇴원 얘기에 더욱 기뻤다.


서둘러서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바로 퇴원해야 하니 병원으로 오라고 전했다. 2주동안 쌓인 이런 저런 짐들이 많아 마침 집에 있던 딸과 함께 온단다. 퇴원 소식을 전하며 조금 흥분했는지 울컥했던것 같다. 매일 전화하며 걱정하시던 부모님께도 전화드려 수치가 좋아져서 퇴원한다고 말씀드렸다.


퇴원 얘기를 들었지만 그 즉시 나가지는 못한다. 퇴원 처방이 내려와야 하고 그에 맞춰 약이 올라와야 한다. 짧으면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 정도 걸리기도 한다. 늦어질 경우 점심시간이 되기에 간호사가 식사 여부를 물어보았으나 어차피 못먹던 밥이라 바로 취소해 달라고 했다.


2주동안 누워있던 무균실에서 나간다는 생각에 룰루랄라 하며 짐을 정리했다. 집에서 아내와 딸이 준비해서 올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한시라도 빨리 무균실에서 나가고 싶었기에 짐을 정리해서 나온 뒤 휴게실에 가서 있었다.


무균실 밖으로 나올때는 마치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물론 실제 교도소에 있다 출소해본 경험은 없어서 추측일뿐이다. 군대 전역할때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 되어서... 휴게실에는 커다란 tv 와 의자가 있고 큰 창문이 있는데 조금 열수가 있다. 휴게실로 오자마자 조금이지만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한껏 마셨다. 깊은 산속의 맑은 공기는 아니었지만 이주만에 맡아본 바깥 공기는 반가웠다.


휴게실 의자에 앉아 이게 꿈은 아닌지 계속 생각했다. 이날 아침도 별다른 일없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올라간 호중구 수치에 맞춰 급작스럽게 결정된 퇴원이라 그냥 좋기만 했다. 무균실에서 퇴원해도 이렇게 좋은데 이제 다 나았으니 앞으로 병원에 올 필요 없다는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마치 처음 훈련소에 들어가면서 전역하는 날 상상을 한번쯤 해보는 것과 같았던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좋긴 하지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고 간절히 바라는 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다리기엔 견뎌내야 할 날이 너무도 많기에 아예 생각도 안하는 심정과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유명한 얘기처럼 신병때는 오지도 않을 전역날이 결국 오기는 온다. 하지만 이놈의 암이라는 녀석은 언제 없어져서 나에게서 떠나갈지 기약이 없다. 그래도 오기는 올 것이다.


그날이 오기전에 아내와 딸이 병원에 도착했다. 각자 트렁크를 끌고 가방을 메고 기분 좋게 퇴원수속을 밟고 병원을 나섰다. 점심때가 다 되었기에 밥을 먹기로 했고 병원 근처 식당에 갔다. 입원해 있을때는 밥때만 되어도 속이 울렁거리고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병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동안 한참 잠들어있던 식욕이 바로 되돌아 왔다.


메밀소바와 유부초밥 세트를 시켜 다 먹고 딸이 시키고 남은 우동까지 전부 먹어치웠다. 입원해서는 밥 먹는게 가장 고역이었지만 밖에서는 밥이라도 잘 들어가니 다행이다. 모처럼 배가 부르다는 만족감에 취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고도 외롭고 힘들었던 무균실 생활이었다. 다시는 무균실에 들어갈 일은 없겠지. 이제는 3차 항암치료를 준비해야 한다. 아직도 갈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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