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의 소중한 일상 , 난 이겨낼 것이다

by 하루진

무균실에서 퇴원후 집에서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다. 무균실에서 퇴원할 정도로 수치는 회복되었지만 아직 항함치료를 할 컨디션은 안되었다. 교수님께서는 3차 항암치료 전에 골수검사를 다시 하자고 하셨다.


원래 항암치료를 하고 항암제를 맞고 나면 암세포뿐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세포도 같이 공격하기 때문에 피검사 수치가 내려간다. 대표적으로 적혈구 수치와 호중구 수치가 내려가는데 적혈구 수치가 많이 내려갈때는 수혈팩을 맞고 , 호중구 수치가 많이 내려갈때는 촉진제 주사를 맞는다.


보통은 항암치료후 3주정도 있으면 어느정도 수치가 회복되어 다시 항암치료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 항암치료는 한 달에 한 번 스케쥴로 정해져 있다. 항암치료 스케쥴은 환자 개개인의 병과 상태에 따라 다르다. 2박3일 입원하여 항암치료 받고 가는 경우도 있고 3주입원하여 항암치료 하고 1주일 집에서 쉬고 다시 항암치료하는 경우도 있는 등 다양하다.


원래 대로면 3차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할 시기였는데 무균실에서 2주를 보내고도 수치가 회복되지 않자 일단 퇴원은 했지만 3차 치료전에 골수검사를 하자고 하신 것이다. 안좋은 소식이기는 했다. 분명 골수에 이상이 있어서 이렇게 오랬동안 수치가 회복이 안되었던 것이라 무언가 더 안좋은 징조인듯 했다.


골수검사일까지는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었다. 무균실에서의 몸 상태가 워낙 엉망이었기에 일주일동안 집에 있으면서 최대한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이때쯤엔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먹으며 체력을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그동안은 집에 있을때 가급적 현미밥이나 잡곡밥, 견과류, 두부, 버섯,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 토마토 등 몸에 좋다고 소문난 것들, 특히 항암효과가 좋다는 음식들을 주로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는 워낙 체력이 떨어져 있어 입에서 당기는 건 뭐든 먹었다. 라면, 튀김, 떡볶이등 분식부터 빵, 과자, 아이스크림등 그동안 의식적으로 안먹으려고 했던 음식들까지 먹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에 항암과 관련한 여러 유튜브도 보고 글도 읽어보고 했지만, 결론은 항암중에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먹고 싶은건 뭐든 먹으라는 것이다. 몸에 좋다는 음식들은 완치후에 관리하면서 먹으면 된다고 한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한다. 고기를 좋아하고 술도 좋아했다. 라면, 김밥, 떡볶이와 같은 분식들도 좋아했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도 식성은 변하지 않았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서 집에서 음식을 내가 한다. 나는 한끼를 먹어도 맛있게 먹자고 하고, 아내는 요리하는 것에 취미가 없고 배만 부르면 된다고 한다.


자연히 집에서 음식은 내가 하게 됐다. 시작은 예전에 캠핑을 다닐때부터였다. 나와서는 남자가 다 하는거라고 캠핑가서 음식을 하기 시작했는데 집에서도 이어졌다. 다행이 음식하는게 싫지 않았고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보면 좋았다. 아이들이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니 자연스럽게 계속 음식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입원해 있으면서도 아이들 밥 못챙겨주는게 미안했다. 아이들이 다 컸는데도 그랬다. 아내는 항상 내 몸이나 신경쓰라고 하면서 다 큰 애들 밥을 뭘 걱정하냐고 난리였는데 말이다.


아뭏든 이렇게 먹을 걸 좋아하는데 암에 걸린 이후 라면, 떡볶이 같은 음식은 아내가 못먹게 했고, 나도 몸에 좋은 걸 챙겨먹어 빨리 낫고 싶은 마음에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러다가 무균실에서 2주 내내 굶다시피 하고 골수검사까지 일주일정도 집에서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는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그동안 먹고 싶었는데 피했던 모든 것들을 신나게(?!) 먹었던 것 같다.


물론 양심상 술은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매번 술과 함께 먹었던 치킨, 삼겹살, 순대국을 그냥 먹자니 밋밋하고 허전하긴 했다. 집에서 열심히 먹고 쉬었더니 조금씩 기운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기운이 없어서 가까운데 산책 나가기도 힘들었는데 이젠 아내와 동네를 걸으며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갔다.


머리는 삭발한 상태여서 비니를 쓰고 감염에도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마스크도 쓰고 다녔다. 살까지 예전에 비해 10kg 정도 빠져 누가 봐도 환자였다. 피부도 푸석푸석하고 눈썹도 많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냥 맨얼굴로는 나가기도 싫었다.


그래도 부작용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멀쩡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 아내와 산책을 하다 보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병원에서 나와 집에서 소중한 일상을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 옆에는 오로지 나만 바라보며 도와주는 아내가 있고, 아빠가 하루 빨리 건강해지길 바라는 아이들이 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


난 이겨 낼 수 있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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