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실에 있을때의 일이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둘째가 첫 알바를 구했다고 한다. 그동안 쿠팡에서 단기 알바만 한 두번 해봤던 둘째가 아빠, 엄마가 이러고 있으니 알바의 필요성을 느꼈나 보다.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지만 대학생이 된만큼 고등학교때보다는 용돈도 더 주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에 오실때마다 용돈을 주셨기에 그간 풍족하게는 아니어도 알바까지 할 정도는 아니였다.
그렇지만 아빠가 암에 걸린 후 아빠 엄마가 전부 직장을 그만두고 있으니 나름대로 각오를 했나 보다. 처음엔 카페나 편의점을 알아봤는데 거의 경력직들만 뽑는지라 아무 경험도 없던터에 알바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집 근처 새로 생긴지 얼마 안된 고깃집에 알바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동안 힘든 힐 한번도 안해봤는데 고깃집이면 꽤 힘들텐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밤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 알바를 나가서 6시간 정도 하고 오더니 집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둘째인 아들은 무뚝뚝한 첫째 딸에 비해서 어렸을때부터 어리광도 심하고 살가운 편인다. 물론 지금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키만 크도 덩치만 커져버린 예전에 비해 재미없는 아들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어리광은 남아 있는 편이라 , 첫 알바 나가서 계속 쉬지도 못하고 힘들게 일하면서 아마도 많이 서러웠던 것 같다.
겨우 버티고 버텨 일하다 집에 와서는 설움이 복받치지 않았을까. 아내는 그런 어리광을 알기에 못본척 했다고 한다. 받아주면 끝이 없을까봐...
참 속상했다. 다 큰 대학생 아들이 알바 한번 나간게 무슨 큰일이냐고 하겠지만 내 심정은 그러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장사를 하다 크게 말아먹은 적이 있다. 당시엔 정말 돈이 없어서 어리 아이들에게 못해준게 정말 많았다. 주말이면 돈 안드는 동네 공원이나 산에 올라가고는 했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먹을거리 파는 노점이나 리어카는 못본체 지나가며 힘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때문인지 아이들에게는 크게 잔소리하거나 혼 내본 적도 거의 없다. 거의 악역은 아내 차지였고 난 항상 맘좋은 아빠 역할을 맡았던 것 같다. 사실 , 어린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파는 솜사탕 먹고 싶다고 보채는데 나중에 사주겠다며 안고 부랴 부랴 자리를 떠나던 그때의 모습만 생각해보면 지금도 너무 속상하다.
아이들은 워낙 어렸을때라 기억은 못하겠지만 몇십년이 지났어도 그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뒤로 가급적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거나 가지고 싶다고 한건 너무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거의 다 해주고 들어줬었다. 그래서 첫째딸도 알바 한번 안하고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둘째한테는 대학 첫입학때부터 내가 암에 걸려버린 것이다.
다 컸다고는 하지만 아빠 눈에는 아직도 한참이나 부모의 뒷바라지가 필요한 아기들처럼 보인다. 이제 막 사회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은 아이들에게 든든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런 지경이라 너무 답답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할때까지 뒷받침 해주는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항상 생각해왔기에 더욱 속상하다.
예전부터 내 인생의 목표는 거창하게 대단한 성공이나 사회적 성공이 아닌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가정은 화목하고 평안하고 , 부부사이는 다정하고, 부모아 자녀 사이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삶에 커다란 굴곡이 없는 그런 평범한 삶.
지금에 와서는 그 평범하게 산다는 목표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안다. 가족중에 누구도 크게 아프면 안되고, 부부 사이는 좋아야 하고, 속썩이는 자식은 없어야 하고, 어느정도는 먹고 살만해야 하고, 남들 하는 것도 적당히는 하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제일 평범하게 되지 않게 되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평범하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주위에 흔하지 않은 혈액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난 더이상 평범하지 않다. 다시 평범해지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다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먹고 반주로 기분좋게 소맥 한잔 시원하게 하고, 아내와 드라마 같이 챙겨보고 산책도 나가며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다.
평범하지만 너무나 소중했던 일상을 다시 되찾고 싶다. 나도 우리 가족도 모두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