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세포 림프종을 진단받고 낙담은 했지만 절망은 하지 않았다. 담당교수님께서도 8차까지 항암치료를 하자고 하셨고, 치료가 잘 될까요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치료하려고 하는거죠라는 자신있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은 되었지만 치료는 전적으로 병원에 맏기고 믿자고 했다. 그런데 이번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은 그간 가지고 있었던 믿음도 흔들리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앞으로는 3주동안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고 언제까지 받을 지는 앞으로의 경과에 따라 결정한다고 했다.
상황은 암담했다. 지금까지 2회 항암치료를 받고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6번만 더 항암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겨우 붙잡고 있던 작은 희망마저 없어졌다. 정말 기약이 없어졌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붙어 있는 급성이란 단어는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던 암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언제 갑자기 더 심각하게 나빠져도 이상할게 없는 걸 나타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최대한 담담하게 있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또 치료에 전념하는 것이다. 상황은 절망적이긴 하지만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매일 아들 걱정에 발 편하게 뻗고 주무시지 못할 부모님이 계시다. 내가 실의에 빠쪄 있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묵묵히 3주동안 입원할 준비를 했다. 정확하게 얘기는 안했지만 3주동안 입원해야 한다는 얘기에 아이들도 부모님도 불안해 하는 기색이였다. 내가 최대한 불안하지 않게끔 잘 얘기한다고 했지만 3주동안 입원한다는 것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 어느빼보다 무거운 심정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나도 아내도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우리 둘 다 심정은 무거웠다. 일단은 평소때와 똑같이 짐을 챙겼고 중간 중간 아내가 집에 다녀오기로 하고 입원을 했다. 항상 입원 첫날은 입원수속후에 간단한 체크만 하고 다음날부터 항암치료를 하게 된다.
첫날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것 같다. 아무리 침착하게 있으려고 해도 앞으로 3주동안 어떻게 버틸지 생각하고 이런 저런 걱정과 고민에 잠을 설쳤다. 무균실에서 2주동안 버티는 것도 힘들었는데 3주나 병원에 있어야 한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오랫동안 장기로 입원하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그걸 위안삼아 버틸 수는 없었다. 당장 또 밥 먹는게 고역인데 앞으로 어떻게 버텨낼까까 가장 고민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9시에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다. 그리고는 모처럼 기쁜 소식을 얘기해 주셨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상태가 좋습니다. 드문 경우인데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인자가 안 보입니다. 기존처럼 외투세포 림프종으로 항암치료 3차를 진행하겠습니다. 입원은 한 주동안만 하시면 됩니다"
"정말인가요? 그럼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아닌거죠?"
"네, 기존에 하던 외투세포 림프종 3차 항암치료를 이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잘됐네요, 감사합니다"
아, 마치 다 나았단 말처럼 기뻤다. 골수검사에서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인자가 보였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는 아주 깨끗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없었던 얘기가 되었고 기존에 진행하던 외투세포 림프종 치료를 계속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완치가 되었던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당장 조금전까지만 해도 걱정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아직 항암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정도는 문제없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아이들에게 알렸다.
아이들에 이어 부모님께도 소식을 전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중에 나왔는데 상태가 좋아서 3주동안 입원할 필요는 없고 기존에 하던 것처럼 일주일만 하면 된다고 알렸다. 부모님도 역시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얘기에 기뻐하셨다.
암에 걸린 이후 처음 듣는 기분 좋은 소식에 한참이나 들떠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얘기에 다시 희망이 생겼다. 잘 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