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이다.

by 하루진

무균실에서 퇴원후 골수검사 결과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나와 앞으로는 3주동안 입원치료 해야된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고 입원. 치료 첫날에 회진온 교수님에게 유전자 검사결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아니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야말로 암에 걸린 이후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은게 사실이었지만, 바닥까지 내려갔다 겨우 겨우 원위치로 다시 온 셈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3주동안 입원해야 한다는 막막함에 죽을상을 하고 있다가 다음주면 다시 집에 갈수 있다는 생각에 마치 다 나은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원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를 3주동안 입원해서 할 예정이었는데, 다시 기존에 이어오던 외투세포 림프중 3차 치료를 받기로 했다. 1, 3, 5, 7차는 동일한 항암제를 맞는 것이니, 1차때와 동일한 항암제를 맞게 된다.


1차때 항암제를 맞자 마자 지독한 오한과 고열로 고생 했었지만, 한 번 경험했으니 처음처럼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이때의 기분은 갑자기 복무기간이 늘어났다가 다시 원상복귀된 심정이었기에 어떤 일이든 견딜 수 있을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월요일 입원후 화요일부터 항암제를 맞기 시작해 일요일까지의 투약 스케줄이 나왔다.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환자를 착각해 항암제를 잘못 투여하거나 그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매 투약시마다 환자 번호와 이름등을 확인한다.


드문 일이간 하지만 소통 상의 오류로 실수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입원하고 있을때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할아버지 환자가 계셨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녁때 검사가 있어서 식사를 금식하거나 미음등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전달사항에 오류가 있었던 건지 점심에 단팥죽이 나왔고 할아버지는 식사가 나오니 그냥 먹었다.


그래서 원래 저녁6시쯤 하기로 했던 검사가 단팥죽이 소화될때까지 기다라다가 밤11시에 했던 경우가 있었다. 원래 7시면 다시 왔어야 할 할아버지가 밤11시가 넘어서 오자 간호사가 와서 연신 사과했다. 점심에 금식을 했어야 하는데 체크가 안되어서 단팥죽이 나가버렸다고. 할아버지도 나도 검사가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냥 먹어버렸다며 자기 실수도 있다고 허허 하며 웃으셨다.


다행이 그런 정도의 실수야 조금 시간이 길어질 뿐 큰 실수는 아니지만, 만에 하나 사람이 하는 일이니 환자이건 보호자이건 자신이 무슨 치료를 받고, 어떤 약을 맞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는게 좋다. 해외토픽에 나오는 일이긴 하지만 아픈 다리는 냅두고 멀쩡한 다리를 수술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물론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의사와 간호사분들이 항시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이상이 없는지 확인에 철저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환자 본인과 옆에 있는 보호자 역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병원에 불신을 가지라는 건 아니지만 가장 먼저 본인이 본인을 챙겨야 하는게 기본이니 말이다.


항암제는 워낙 독하고 중요한 약이기 때문에 매번 철저한 확인 절차를 걸쳐 투약이 된다. 안심해도 된다. 항암제를 맞기 전에는 항상 전처리제와 맞고 나서는 깨끗이 씻어내는 생리식염수를 맞게 된다. 독한 암세포이고 독한 암세포를 죽이기 위헤서는 더 독한 약을 써야 한다. 그런 독한 약을 맞기 때문에 맞기 전과 후에도 대비를 한다.


이번에는 다행이 1차때와 같은 부작용은 없었다. 벌써 내성이 생긴건지, 한 번 맞아봤다고 몸에서 익숙한 건지 오한도 없었고 발열도 없었다. 여전히 울렁거림과 메스꺼움은 똑같아서 밥은 여전히 먹기 힘들었다. 그래도 지나간 길이었기에 처음 갈때와 같은 긴장감과 불안감은 많이 없었다.


1차때 오한과 발열, 2차때 언어곤란과 다리마비에 이은 무균실, 그리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에다가 다시 원위치까지 그건 정신없는 치료였다. 이제 겨우 안정적으로 치료에 들어간 느낌이다. 다시 시작이다. 바뀐 건 없다. 바닥까지 떨어질뻔 했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여전히 정상으로 가는 길은 멀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이다. 이젠 정말 좋아질 일만 남았겠지.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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