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항암치료는 순탄하게 흘러간다

by 하루진

3차 항암치료는 비교적 순탄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1차때와 2차때는 전부 부작용으로 고생했지만 그사이 몸이 익숙해져버린건지 몇시간씩 항암제를 맞아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1차때부터 계속 있던 울렁거림과 메스꺼움은 도무지 좋아지지를 않았다. 비급여로 꽤 비싼 가격이었던 울렁거림 방지 패치를 붙여 보고, 울렁거림 방지 약도 매번 먹었지만 상태는 똑같았다.


컵라면을 먹거나 물에 말아먹거나 먹는둥 마는둥 했다. 옆에서 아내가 계속해서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도무지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밥 시간만 되면 짜증이 났고, 조리원이 밥을 가져다 주면 구토를 할 것 같아 수건으로 음식 냄새가 안나게 얼굴을 막았다. 아내가 창문을 열어 냄새를 빼고 조금 후에야 겨우 한 술 먹곤 했다.


이 증세는 항암치료 하러 입원하는 기간 내내 변함이 없었다. 처음 몇번은 비싼 패치도 붙이고 해봤지만 전혀 효과가 없어서 그냥 포기했다. 어머니가 가끔 병원에 면회올때 밥먹을때 먹으라고 반찬도 가져다 주셨지만 그래도 밥이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 퇴원만하면, 아니 병원 밖만 벗어나면 신기하게도 먹을게 잘 들어갔으니 다행이었다.


이때쯤 장인어른께서도 뇌경색 초기 증세로 몸이 안좋아 대전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하신 상황이었다. 내 주변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는 다 알렸지만 오직 장인어른께만 알리지 않았다. 전라북도 무주에 계시는데 휴가때나 생신때, 연휴가 생길때 찾아 뵙고는 했으니 굳이 걱정하실까봐 알라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당연히 나는 문병도 못갔고, 나는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만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다.


아내는 5남매중 세째딸이었으니 나는 막내사위였다.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장인어른이나 장모님이 편찮으실때나 일있을 경우에는 자주 찾아뵈었기에 아마 장인어른께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을 하다. 작년에도 장인어른 눈때문에 병원을 가셔야 할때도 연차를 내고 2박3일동안 아내와 같이 장인어른을 모시고 병원에 다녔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쩔수 없었다. 지금 내 몰골로는 문병을 갈 상태는 아니었다. 살은 예전보다 10키로나 빠졌고, 근육도 다 빠져서 볼품 없었고, 머리는 삭발이었고, 안색은 나빴다.


이런 모습으로 문병 가봤자 걱정만 하실테니 도저히 찾아 뵐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두 달 동안 입원치료 하고 계시는데 한번도 못 찾아뵈어서 죄송한 마음은 가득했다. 처가 식구들하고는 장인어른 퇴원하시고 상태 좀 좋아지신 후에 천천히 말씀드리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계속 바쁜 회사일 핑계를 댈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 상황이 문병을 갈 상황은 아니고 문병을 받아야 하지만 작년에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부쩍 약해지신게 보이는 장인어른이신지라 걱정이 되었다. 퇴원한 후에 찾아뵐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 현재 체력으로는 장시간 운전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고, 감염의 위험때문에 가급적 사람 많은 곳은 피하는게 여러모로 좋은 상황이었다.


장인어른을 못 찾아뵈어 불편한 마음외에 3차 항암치료는 순탄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며 믿기지 않을때가 있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벌써 처음 암 진단 받은지 3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자복 입고 침대에 누워 항암제 맞고 있을때면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싶기도 하고 과연 깨끗하게 완치 될 날이 오긴 올까 싶기도 하다.


옆에서 고생하는 아내와 집에 있는 아이들과 부모님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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