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항암치료가 끝나는 날에 작은처남의 아이 돌잔치가 있었다. 암에 걸린후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렇다할 경조사는 없었고, 처음 있는 행사가 돌잔치였다. 상황이 이런지라 참석에 대해서는 않았지만 최근 컨디션이 괜찮아져 날짜만 맞으면 참석하고 싶었다.
암에 걸린 이후 처가집에는 한번도 가지 못했고 , 장인어른이 뇌경색 증상으로 입원해 계신 중에도 문병은 가지 못했다. 장인어른이 병원에 계실때는 걱정하실까봐 얘기하지 못했고, 퇴원하시면 얘기하기로 했었다.
장인어른께서는 한 달정도 입원후에 퇴원하셨고 작은처형이 돌봐드리기 위해 며칠동안 같이 가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암에 걸려 치료중인 사실을 말씀드렸고 크게 놀라시고 걱정하셨다고 한다. 처형 말로는 눈물도 보이셨다고 한다.
그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작년에 장모님이 돌아가신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뇌경생때문에 크게 고생하셨는데 막내사위까지 암에 걸렸다고 하니 많이 속상하셨을것 같다.
아내는 5남매중 세째로 위로 언니 두 명과 밑으로 남동생 두 명이 있다. 5남애의 우애가 돈독해 1년에 몇 차례씩 처가집인 무주에 모여 놀러가거나 모임을 한다. 나도 전에는 처가에 자주 들렸었는데 장인어른께서도 내가 문병을 오지 않아 내심 이상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작은처남 돌잔치때 장인어른도 올라오시고, 처가집 식구들이 모이니 나도 가능하면 가고 싶었다. 원래는 항암치료후 월요일에 퇴원하는데 교수님께 미리 말해 토요일에 퇴원할수 있도록 스케쥴을 조정했다.
다행이 퇴원하는데 지장없을 정도로 컨디션이 유지되어 퇴원후 가족들을 데라고 돌잔치 장소로 시간맞춰 이동했다. 암에 걸린 이후 처음으로 참석하는 행사이다. 처자집 식구들이 모두 모였고 나에게도 건강한 모습으로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안색이 아직 안좋으신 장인어른께서도 내 손을 잡으시며 고생 많다고 힘내라고 하신다. 당신께서도 편치 않으실텐데 암에 걸린 막내 사위 걱정이라 내가 더 죄송했다.
몸이 아프고 난 다음에 절실히 느끼는 거지만 정말 가족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친구들도 걱정해주고 응원해주긴 하지만 가족들과는 차이가 있다. 내가 그런 친구를 여지껏 못사귄 잘못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느끼고 있다.
젊었을때야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고 어울려 놀러 다니고 술마시고 당구치고 잘 놀았지만 가정을 꾸리고 난 다음에는 아내과 아이들이 내 일부분이다. 암에 걸렸을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게 아이들과 아내였으니 내가 죽고 사는거 보다는 나의 부재가 우리 가족들에게 미칠 영향이 더욱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부모님 생각이 났고 그 다음이 처가집 식구들 그 다음이 친구들 생각이었다. 가족들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혼자가 아니란 생각과 내가 살아갈 이유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족들이다.
내가 얼른 건강해져야 가족들이 걱정안할텐데 걱정이다. 이제 4차 항암치료까지 마쳤으니 반환점을 돌았다. 처음 계획이 8차까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물론 8차까지 항암치료를 마치고도 안 좋아져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할수도 있고, 그 전에 좋아실수도 있다.
교수님께 물어보니 6차 끝나고 다시 한번 골수검사후 경과를 본다고 한다. 일단 6차까지는 받아야 하니 아직 두 번의 항암치료가 지나야 내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최근 컨디션으로는 많이 좋아진것 같지만 검사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좋아졌으면 좋겠다. 빨리 소중한 가족들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