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항암치료를 무탈하게 마치고 작은처남 돌잔치까지 다녀왔다. 그동안 가까운 사람들중에는 내 투병 소식을 유일하게 모르게 계셨던 장인어른도 뵘으로 인해 알게 될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후련하다고 해야 할까 묘한 기분이었다.
장인어른이 병원에 입원해 계신동안 나는 무균실에서 기약없이 입원해 있던 가장 최악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전화도 못드리고 문병은 생각도 못했었다. 항상 죄스런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뵙고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이제는 상태가 좋아져서 통원 치료만 하시면 되는 장인어른에 비해 나는 아직도 갈길이 멀었지만, 그동안 연락을 못드린 것도 이렇게 아프게 된것도 모두 죄송했다. 그래도 비교적 상태가 좋아져 돌잔치까지 참석할만한 컨디션이 된것은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비록 살은 빠지고 머리는 삭발해 비니는 쓰고 있었지만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가족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무균실에 있었거나 항암치료 기간이었다면 참석못해 다들 더욱 걱정이었을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항암치료 마치고 퇴원할때마다 반찬과 농사지은 농작물들을 잔뜩 싸가지고 보러 오셨고, 처남과 처형들에게는 단톡방을 통해 치료경과를 공유하고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과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당구를 치는 정도였다.
그외에는 사회적인 관계나 만남은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회사 동료들과 술도 자주 막고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들이나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렸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자리들은 점점 피하거나 줄이게 되었다. 그래서 병원과 집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사회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답답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저 언제쯤 다시 사회로 복귀할수 있을까만 궁금했다. 잠시 쉰다고 생각은 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집과 병원만을 오가야 할지 궁금하다.
처음 암에 걸린걸 아이들에게 얘기할때 그랬었다. 지금껏 휴가를 제외하고 한번도 오래 쉰적이 없었는데 이참에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던거 좀 쉬라는 뜻으로 알고 쉬어 가겠다고. 대신 윌 이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겠으니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고 평소와 똑같이 지내라고 했었다.
처음엔 막연하게 몇 달 치료받으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머지 않아 곧 일상으로 돌아갈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항암치료 시작한지 반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아직도 갈길은 멀었다. 결국 아내는 나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중이다.
둘째는 내후년이던 입대계획을 내년으로 앞당기려 한다. 조금씩 가족의 일상이 변하고 있고 나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지금으로선 오로지 건강을 회복하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다. 그렇지만 아슬아슬하다. 출구가 안보이는 어두운 길을 막연하게 헤매는 느낌이다. 출구를 찾아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은 출구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앞이 안 보이는 나를 가족들이 이끌어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짐이 될수는 없다. 물론 가족들은 나를 짐으로 여기지 않겠지만 쉬는 시간이 길어질까봐 조금씩 두려워진다. 의식적으로 생각안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점점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를 걱정하고 믿어주는 가족들이 있으니 나도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