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암 환자로서의 시작을 해야 한다

by 하루진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에 가서 담당교수에게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아니라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혹시나 하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고 속절없이 닥친 현실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다.


며칠동안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대해 알아보며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당장 떠오르는 현실적인 질문들을 해야만 했다.


"직장은 다닐 수 있나요?"


"어림도 없습니다."


교수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항암치료를 해야 하며 8차까지는 해야 한다고 한다. 한 번 할때 1주일동안 병원에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하게 되며, 3주일동안은 집에서 쉬며 다음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항암약이 독하기 때문에 항암치료중에는 다른 일상생활은 생각하지 말고 치료만 신경쓰라고 한다. 평상시와 똑같이 회사를 다니고 일상생활을 하며 치료를 해나겠다던 나의 생각은 헛된 망상으로 끝나버렸다. 암이란 녀석을 너무 우습게 봤었다 보다.


"혹시 머리는 빠지나요?"


"1차 항암치료후 빠집니다"


다시 교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머리가 중요한 직업이나 나이는 아니지만 뭐라도 더 물어보고 싶었다. 머리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확실한 환자의 징표가 된것처럼 보여질거란 생각이 들었다.


교수는 다시 한번 정확한 진단을 위해 바로 입원해서 골수검사를 비롯해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루라도 빠른게 중요하니 바로 검사를 위한 입원 일정을 잡았다. 이 날은 목요일이었고 바로 돌아오는 월요일에 입원 일정을 잡았다.


교수실을 나와 간호사에게 입원일정을 다시 전해 듣고 입원계에 가서 수속을 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병원을 나오며 아내가 무섭다고 울었다. 나도 사실 울고 싶었다. 다만 아내에게는 괜찮을 거라고 치료 잘될거라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를 위로하며 머리속으로는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걱정이었다. 직장은 어떻게 해야 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부모님에게는 어떻게 이 사실을 얘기해야 하지라는 걱정에 가슴이 답답했다.


우습게도 내가 이 병을 잘 이겨낼수 있을까라는 걱정보다는 이 소식을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전해야 한다는 게 더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은 거의 다 크긴 했지만 아직 내 눈에는 어리게만 보이고 아직 아빠의 뒷바라지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받으실 부모님 걱정이 되었다. 다행이 부모님 두 분은 모두 팔순에 가까운 나이셨지만 잔병치레도 거의 없이 건강하셨다. 부모님은 그렇게 건강한데 장남(남동생이 한 명 있다)이 이런 병에 걸리게 되었다니 이런 불효가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아내가 조금 진정된 후 아이들에게는 아직 얘기 하지 말고 골수검사 결과까지 난 후에 얘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직장은 바로 그만두기로 했다. 다니던 직장이 그렇게 좋은 직장은 아니어서 병가를 신청해도 무급으로 쉬어야 했고, 앞으로 치료가 어떻게 될 지 모르니 퇴직금이라도 받아 대비해야 했다.


사실 교수님 말대로 치료에만 전념해도 잘될지 안될지 모르는 현실이었다. 나는 암 환자였고 그것도 무서운 백혈병이다. 직장도 중요하고 가족도 중요하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은 여러 가지로 나를 압박했다. 예전에 사업하다 망해서 한동안 고생을 좀 한 뒤에 겨우 남들 비슷하게 살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암이라니..... 정말 인생 만만치 않다.


주택담보대출에 이런 저런 대출까지 있어서 내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내가 암에 걸렸던 어쨌던 간에 이자와 원금이 무섭게 닥쳐올 것이다. 암도 무섭지만 돈 역시 무섭다.


그래도 일단은 치료가 우선이다. 일단 퇴직금하고 가진 돈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을것 같으니 앞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치료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심란한 와중에 이 삼일은 금새 지나갔고 골수검사를 위한 입원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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