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으로 입원을 하다

by 하루진

정확한 진단을 위한 골수검사를 위해 2박3일의 입원 일정이 정해졌고, 입원날은 금새 다가왔다. 지금까지 살면서 입원이란걸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선 경험이었다. 물론 죽을때까지 경험하지 못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경험이겠지만 말이다.


2박3일의 짧은 입원이긴 하지만 아내가 보호자로 같이 가다 보니 짐이 많아 여행때 사용하던 트렁크를 써야 했다. 병원에서 준 입원 준비물과 주의사항들을 읽어 보며 준비를 했다. 특별할건 없었고 여행때와 거의 동일하게 갈아입을 속옷과 세면도구등 기본적인 것들을 챙겼다.


골수검사 후기들도 많이 읽어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겁이 났다. 대략적으로 내가 알고 있기로는 척추쪽에 드릴(?!)같은 기구를 이용해 골수를 채취하기 때문에 상당한 고통이 따른 다는 것이었다. 경험자들의 경험담을 읽다보니 그래도 견딜만했다던가 걱정했던것보다는 괜찮았다라는 후기들이 꽤 많았다. 물론 너무 아파 고생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골수를 채취하는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덜 아플수도 더 아플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제발 내 골수를 채취할 의사는 숙련자이길 바라며 기도했다.


대학병원에는 십몇년전에 사고로 입원한 사촌동생을 면회하러 가 본 게 다였다. 그렇기 때문에 큰 대학병원은 워낙 찾는 사람이 많아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고압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혹시라도 맞닥드리게 될 불친절을 각오했지만 다행이 안내를 해준 직원이나 입원수속을 해준 담당자들 모두 친절해서 안심했다.


사실, 병원을 차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다른 곳보다도 더 친절해야 하는게 병원이 아니겠는가.


아내와 함께 트렁크를 끌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배정받은 병실을 보니 6인실이고 문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침대가 3개씩 마주보고 있다. 한 쪽이라도 사람이 없는 끝자리를 원했지만 가운데 자리여서 아쉬웠다. 이번 입원이야 어차피 2박3일의 짧은 일정이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었지만 아내와 같이 있어야 했기에 가운데 자리는 특히 좁아서 불편했다.


내 기억으로는 예전에 병원 면회갔을때는 병실에 환자와 보호자, 면회객들이 어울러져 북적북적한 분위기였고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를 지내며 병실에 상주 보호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에 병실 안은 조용했다.


혈액종양내과 입원실이었고 한 눈에 보기에도 50대 초반의 내가 가장 어려 보였다. 거의 60대 이상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고 보호자 없이 혼자 계시는 분들도 많았다.


환자가 사용하는 침대가 있고 침대 옆에는 수납장, 그리고 보호자가 사용하는 의자 겸 침대가 있었다. 옛날에는 고정형 보조침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평상시에는 접어서 의자로 사용할 수 있고 다 펼치면 침대로 사용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나였으면 불편해서 상당히 고생했을듯 하다. 물론 아내도 불편했겠지만 나를 생각해서인지 불만 없이 괜찮다고 내내 사용했다.


가져온 트렁크를 열어 짐 정리를 하고 환자복을 갈아입으니 간호사가 나와 키와 몸무게를 재라고 한다. 이 당시 내 몸무게는 62kg 정도 였다. 몸에 이상이 있기 전까지는 거의 70kg 초반을 유지했기 때문에 거의 10kg 정도가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누워있으면 심전도 검사를 하고 피검사를 한다. 심전도와 피검사가 끝나면 엑스레이를 찍으러 간다. 다 처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아내가 옆에 있기 때문에 위안도 됐고 나도 더 아무렇지 않은척 할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아마도 정말 외롭고 힘들었을것 같다.


엑스레이까지 찍고 올라와 누워있으니 와서 수액을 달아주고, 피검사 결과 혈소판 수치가 낮아 수혈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여지껏 군대 있을때 빼놓고는 헌혈 한 적도 없는데 수혈을 하게 되었으니 진작 할 수 있을때 헌혈이라도 할 걸 후회가 되었다.


새삼, 스스로 나서 헌혈 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비로소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수액과 수혈팩을 팔에 꽃고 누워있으니 불편하기도 했지만 서서히 내가 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간호사분들도 다들 너무나 친절하셔서 내가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엇는지 깨닫게 되었다. 수시로 와서 혈압체크와 온도체크를 해주고 수액이나 수혈팩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도 해주고 왔다 갔다 하며 환자들을 케어해주는 걸 보니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네 싶었다.


입원할때 나는 일반식을 신청했고, 아내는 따로 밥을 신청하지 않았다. 식사시간이 되면 일명 밥차가 올라와 식사를 갖다준다. 처음 병원에서 받아본 식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단은 밥과 반찬, 국을 싹싹 비웠다. 그런데 내가 나중에 항암치료를 하러 입원을 일주일씩 할때는 병원에서 밥 먹는 시간이 가장 괴로웠고 힘들었다. 이 얘기는 앞으로 종종 할 듯 하다.


아뭏든 처음에는 병원에서 밥을 잘 먹는 게 치료를 잘 받는것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먹었고, 아내는 편의점에서 사온 빵과 우유로 간단히 때웠다.


일단 저녁까지 먹고 나면 할일은 없는 것 같았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도 거의 조용히 핸드폰을 하거나 잠을 자서 조용했고 한 대 있는 조그만 텔레비젼은 아무도 보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가져가 간 핸드폰과 태블릿을 사용했고, 몇 시간 후면 닥쳐올 골수검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점점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고 다음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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