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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Jan 26. 2023

이것저것 시도해보기

연극 <자격>을 보고  _2022.12.

오랜만에 대학교 때 같이 졸업 공연을 올렸던 친구의 공연을 봤다. 현실 속에서 꿈을 그리 연극을 여전히 꾸준히 올리고 있는 친구가 대견스러웠다. 힘들 법도 한데 지치지 않고 어렸을 때보다 훨씬 안정감있게 무대를 누비는 호흡과 몸짓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는 그녀한테 오늘 또 반해버렸다.     


난 현실을 보며 연극과는 멀어졌는데 연극무대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설레고 삶을 돌아보게 된다. 영화는 똑같이 기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지만 연극 무대는 매 순간 매 관객과의 만남마다 공간의 공기와 흐름이 매번 새롭다. 연극은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감동이 있다.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애드리브와 관객과의 호흡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대에서의 스토리 라인과 감동은 여전히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고 공연의 여운은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대학생 때는 배우들의 연기를 하나하나 따지고 평가했다면 지금은 그냥 무대를 즐겨본다. 그냥 배우들을 마음껏 예뻐해주고 싶다. 배우의 연기보다는 스토리 라인 위주로 인상깊은 대사 한마디를 마음에 새기며 다시 삶을 살아갈 자원으로 삼는다. 굳이 그들의 무대를 평가하고 싶진 않다. 관객으로서 아름답게 꿈을 그리는 그들을 보며 마음으로 감탄해주고 응원하고 싶다.


화려한 음악으로 이뤄진 뮤지컬도 좋지만 풍부한 감정선으로 무대를 이끄는 우리들의 삶과 이야기를 다룬 연극을 봄이  좋았고 공연을 통해 숨 쉴 틈을 얻었다.     

꿈과 열정으로 모인 순수한 친구들이 많다보니 함께 밤을 새 가면서 했던 작업이 그렇게 재밌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가끔은 그립기도하다.


그렇게 열심을 내며 하고 싶어서 안달인 열정호구들(?)이 모여있어서 그런지 여전히 정당한 페이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안타까웠다. 대학 때처럼 배우들이 여전히 소품과 의상을 구하러 광장시장을 누비고 직소기를 들고 판자를 자르며 무대 작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단 이야길 들었다. 뮤지컬같은 대형 상업적인 공연이 아닌 이상 연극 무대는 분업화되어 있지 않다보니 배우들은 여전히 스탭 요소를 도맡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연극의 현실이란 친구의 말에 괜히 씁쓸해진다.      


나도 내 사비를 털어서 밥먹을 돈을 아껴서 의상과 소품을 준비해서 공연작업을 했었다.

캐릭터 하나를 창조하려고 서초중앙도서관과 여러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서적들을 리서치했고 관련 종사자들이나 인물들을 인터뷰하러 돌아다녔다. 대본을 분석하고 때로는 만들고 수정하며 이야기를 서로 공유했던 작업들, 밤을 새가며 나무 판자를 자르고 직소기질을 하고 페인트칠을 하고 먼지를 흠씬 뒤집어쓰고 연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작업들이 돌아보면 힘들어도 재밌었던 꿈같은 작업이었다.     


유동적이지 않은 연습 시간 덕에 고정적인 일을 구하기 힘들어서 연습이 없는 날이면 그때 그 때 알바를 뛰고 알바를 뛰다보니 연습시간이 부족한 상태로 공연을 준비하고 소품이나 무대에서부터 자본이 부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연의 퀄리티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힘든 여건에도 하고 싶은 사람들로 모여서 그런지 연극무대는 배우들의 에너지로 반짝반짝 빛난다.      


여전히 무료로 지인들에게 팔리는 초대권, 자본이 부족한만큼 소품과 무대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공연의 퀄리티는 떨어지고 관객들의 수요도 줄어든다고 하니 악순환이다. 결국은 이런 문화가 바뀌어야 될텐데 그렇게 꿈팔이하며 매진하다 보면 열정이 소진되어 현실을 보며 지쳐서 무대를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당한 페이없이 열정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 번아웃이 오고 그렇게 공연과 사람을 좋아했어도 돈이 없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사람들과 만나기가 싫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했고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경험이 있었다. 그 일을 번복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더 철저히 계산을 하고 따지며 현실적인 사람이 되려고  평범한 기준에 맞추고 싶어서 아등바등 노력하게 됐던 것 같다.


그렇게 자연스레 각자 현실이라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며 연극에서 떠나 삶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또 다른 배우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됐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대에 남아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리와 몸짓으로 새로운 캐릭터로 표현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사랑스럽고 그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운 예술가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공연에서의 기획과 홍보는 참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예술가들이 정당한 페이와 대우를 받으면서 그들의 순수한 무대를 펼칠 수 있도록 우리부터 그런 문화를 만들어줘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가는 순수한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되 기획팀은 그들이 더 대우를 받을 수 있게끔 적절한 페이를 받을 수 있는 환경요소를 만들어주는게 중요하고 예술인 사업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면 다 챙겨먹을 수 있도록 꼼꼼히 챙기는게 중요한 요소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땐 삼각김밥에 컵라면도 괜찮다며 이야기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을 마주하며 지치고 열정도 총량이 있어서 소진됨을 경험하게 됐다. 그렇다면 적절히 오랬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페이를 받을 수 있도록 공연의 퀄리티는 더 높아져야 되고 예술가들이 표현하도록 하는 가치들이 잘 구현되야 할텐데 관객과의 수요가 잘 맞아떨어질 수 있는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공연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들의 뼈아픈 팩트 폭행이 아팠지만 적절히 받아들이고 섞어본다. 예술가들이 표현하고자하는 가치를 높이사고 응원하되 기획팀이라면 꿈과 이상, 내면적 가치만을 이야기하기보단 적절한 외적인 보상을 챙길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서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는게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가치만을 높이 추구하며 후원을 받지 않은 마더테라사의 일화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밑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던 환자들은 돈이 없어서 깨끗한 환경에서 치료받지 못했고 고통받았다는 일화만 보더라도 열정만 요구하며 순수한 예술을 이야기하며 공연에 적절한 페이를 챙겨주지 않는 문화는 바껴야 될 요소인 것 같다.


현실을 살아가다보니 답답해서 숨쉴 틈이 필요했다. 과거 웨이트쪽 제의를 해줬던 친구의 ‘돈때문에 오는게 아니잖아.’ 라는 한 마디에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맞아. 원래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진정성있게 가치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지. '조건이 바껴서 그곳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 말 덕에 잊고 살았던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말이 꽤나 고마웠다. 덕분에 다시금 공연 무대에서의 <즉흥예술>기획자로서 제의에 순순히 응하며 열정 호구짓을 또 자처하게 됐던 것 같다.

<즉흥예술>의 사랑스러운 후기


‘슬아 좀 특이한데?’ ‘그래. 어쩌겠어. 난 특이하니까 그냥 현실에서 막대한 부를 이루는 성공을 꿈꾸기보단 꿈과 가치를 이야기했던 특이한 짓을 한번쯤 시도 해봐야겠다.’ ‘지금 당장 돈은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헤딩을 해보며 <즉흥예술>오랫동안 지속하고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를 고민해본다.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라는 따뜻한 말에 힘을 받아서

최근 일을 줄이고 하고 싶은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보며 과거보다 돈은 반타작이 났는데 행복해졌다.

그리고 이런 나의 시도를 '특이한게 아니라 고귀하다'라고 표현해준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필라테스 일 또한 너무 좋았고 사랑했지만 그렇게 일을 줄이니 그 여백이 다양한 것들로 채워져서 다채로워졌고 여전히 바쁘다. 그림을 그리면서 필라테스와 표현예술치료, 접촉즉흥 등을 결합시켜서 나만의 차별화된 수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결합하고 꿈들을 쫓다보면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올거라고 믿는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 ~ing


과거에는 자기계발서 속의 얘길 실행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평범함 기준에 부합하고 싶어서 나를 맞추려고 틀에 맞추려고 아등바둥거렸다. 여전히 현실적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자신의 모습이 괜시리 불안해지곤 한다. 그들의 말이 성공에 가깝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행복감과는 거리가 멀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여전히 나는 흔들거리고 휘청거리는 중이다.

다시 그냥 필라테스 일을 추가로 구하는게 나을까?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라면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에 기간을 정해두고 여러 가지 이것저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시도해본다.     


현실적인 사람들의 뼈아픈 조언에 힘들긴 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고 열정호구가 아닌 정당한 페이를 받을 수 있게 퀄리티를 높이고 공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오랫동안 공연 문화를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은 뭘까? 에 대해 고민해본다.

    

<자격>의 커튼콜


친구의 <자격>이라는 연극. 13시간씩 연습을 하던 프로그래머, 그렇게 연습을 해도 승리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고 소진이 되어 박수칠 때 떠나서 회사에 들어왔다던 인물, 감성적인 대리님, 대충대충 일을 하는 계약직, 명령을 전달하는 상사가 등장한다. 갑작스럽게 야근업무가 잔뜩 쏟아져서 이 일을 다 끝내기 위해서는 1명만 칼퇴를 할 수 있어서 누가 칼퇴할 자격이 있는지를 주장한다. 전직 프로그래머를 했던 직원을 빼고는 소개팅, 자녀의 학예회, 피시방 대회 등 모두가 각자의 칼퇴할 이유를 주장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가만히 있던 전직 프로그래머도 나도 칼퇴를 하고 싶다며 주장을 하는데 ‘그냥 정시 퇴근하면 안되냐’는 발언에 모두가 칼퇴를 하며 마무리 됐던 공연.  일에 자신을 갈아 넣느라 친구도 가족도 미래도 지키기 버거웠고 일보다 소중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에 수업을 13~14시간씩 일에 빠져서 몰두하며 살았었다. 그래서 일만 하는 기계같단 소릴 들은 적도 있었다. 덕분에 목표했던대로 전세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 갚긴 했다. 하지만 목표를 이뤘어도 꽤나 허탈했다. 그렇게 너무 일에 매진하다보니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좋아했던 사람을 잃었다. 이것만 하고 주변 사람을 돌아봐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다음은 주어지지 않았다.  일에 몰입하고 몰두하다보면 내가 힘들고 지쳤다는 감각을 못 느끼고 내달릴 때가 꽤나 많았다. 그러다보니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가고 나서야 새롭게 도전할 여유없이 하얗게 소진되어 있는 지쳐있는 나를 마주하며 돌아보게 됐던 것 같다.


사람에게는 적절한 쉼이 주어져야 하는데 그땐 삶의 힘든 감정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서 나보다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매진했던 것 같다. 일이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일을 하거나 격한 운동을 할 때만 살아있는 것 같은  중독상태였다. 그땐 휴식을 취하고 가만히 있는 나를 견딜 수 없었다. 이제는 나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며 일 외에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며 지쳐있던 나를 달래가며 이것저것을 해다. 나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불안하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다시금 시도해본다.

<즉흥예술> 최루시아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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