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人間이라고 한다. 즉 관계 속에 있을 때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만 알고 남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지식적으로 배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나는 진정 인간다운 삶을 살았을까? 그런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고 관계에 목말랐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속에서만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눈여겨볼 뿐 행동으로써 관심을 표현하지 못했고 의도치 않게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인간답지 못한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때문에 일적인 면에 있어선 철저한 성실한 '사람'이라 평가받았지만 함께 하고 싶은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고 관계에 대해 항상 속앓이를 하고 극심한 고독감을 느꼈다. 나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내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길 원했기에 우울함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면 표정으로 그대로 내비치곤 했는데 이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때 당시엔 부정적인 감정도 무조건 표출하는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기적인 태도가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밝은 미소 또한 상대방에 대한 하나의 배려임을 어리숙했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그말에 의미를 깨달은 나는 관계에 대한 변화를 간절히 원했고 나는 마음가짐을 고쳐 먹고 미소짓기를 연습했다. 물론 처음엔 웃는다는게 남의 옷을 입는 것처럼 영 어색했다. 교수님께 염세적인 아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웃음과는 워낙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웃는 것 자체가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미소짓기를 연습하니 표정이 점점 변화하고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됨을 몸소 체험하고 깨달았다. 뇌는 참 단순해서 거짓으로 웃는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웃는 것으로 착각하고 웃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고 하니 내 노력으로 만들어낸 웃음으로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라는 말에서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됐음에 감사하게 됐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내게 참진리를 알려준 것 마냥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고 그의 사상에 푹 빠져서 책을 읽어 내려 가게 됐다. 오늘날과 같이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정말 수많은 계층,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 경험하고 체험한 그의 일화들은 매우 놀라웠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히 마술사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요새 흔히 나오는 자기계발서의 성공담처럼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이 느껴지는 먼 이야기가 아닌 삶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를 진솔하게 제시한다. 여러 위인들의 명언과 일화로 엮어져 있어서 제목에서 풍겨오는 딱딱함과 달리 지루하지 않고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소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모든 인간은 사랑받고 인정받길 원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려 주었다. 상대방이 무서운게 아니라 모두 연약한 존재라 그런거라고 어쩌면 다들 연약하기에 꽁꽁 숨기고 좀 더 따스하지 못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고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얘기하고 다가가라며 내게 포근한 조언을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어렴풋이 인지하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든 배움, 지식이 그러하듯 행동으로 실천하는게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 타인의 변화 가능성, 잠재력을 믿고 칭찬으로 용기를 주는 것,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좋은 관계란 내가 먼저 좋은 인간이 되어야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같다. 사람에 대해 깊이 있게 관심을 갖고 대인관계에 대한 얇팍한 처세술을 떠나 사람 자체, 인간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으며 카네키는 참 따스한 사람이었겠거니 추측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흔한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하나 하나가 와닿고 감명깊게 느껴졌고 그를 닮고 본받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사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볼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고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강자한텐 강하고 약자한텐 따스한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며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보기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돌아보도록 노력해야겠다. 세상에 작게라도 한줌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위해 진정 소통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용기를 내야겠다.
사람의 생각은 물과 같이 흐르고 변한다.
29살이 되어 22살의 생각을 마주하며..
웃지 못 할 상황에 웃어 넘기며 억지로 괜찮다며 참아내고 정신 승리를 하는게 과연 옳은 것일까? 지금은 의문이 든다.
지금의 이 생각도 또 물흐르듯이 변하겠지.
그 당시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으며 감동받아 펑펑 울었던 20대 초반의 내가 흐릿하게 스친다.
그때 가면을 쓰고 괜찮다며 웃어 넘기고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구멍난 댐을 고치지 않고 호미로 막으며 해결을 안 하고 지나친 것과 별 다를바 없단 생각이 든다.
그냥 실질적 해결보단 정신승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감추면 결국 고이게 된다.
그 고인 감정은 몸에 저장을 하고 기억한다.
조금은 눈치보지 말고 털어내는 것도 좋은데 참 쉽지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주문을 외우듯 괜찮다며 웃는 연습을 했었는데 그냥 꼭 밝지 않아도 약간은 염세적인 모습 다양한 모습이 있을텐데... 그런 시점과 시기가 있을 뿐이니 그냥 내버려둬도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 글 속에서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는데 여전히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내게 머물러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어떤 노력을 해도 남아있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는 건데..오랜시간 곁에 머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게 정답이지 싶다.
인연의 총량이란 말이 있다.
어떤 관계는 각자 많이 끌어 쓴 만큼 빠르게 소진되는 관계가 있다. 행복과 기대감이 큰 만큼 실망감이 커서 빠르게 헤어지기도 하고 의외로 기대없이 잔잔히 오래 지속되는 관계도 있다.
오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감과 꾸밈없이 솔직한 부분, 자신을 드러내는 부분도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더 예쁘게 밝게 포장할 수록 그런 부분을 보고 기대하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그대로인 모습을 내비치며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거기서 이 모습을 유연하게 넘어갈 사람도 있고 멀어질 인연이 서로 갈리기도 하는 것 같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가도 되지 않나.. 생각보다 너무 착해지려고 억지로 웃고 좋은 모습만 보일려고 애쓸 필요는 없지 싶다.
어떤 관계에서 부담을 느낀 경우, 나에 대해 비판을 일삼고 자신만의 주장을 고집하는 이에게는 일부로 정이 떨어질 만한 행동들을 골라서 했던 것 같다. 꾸미지 않은 모습, 울적한 가정사를 내비치고 호감이 떨어질만한 싫어할만한 말투와 행동들을 일부로 의도적으로 내비춘 적이 있었다. 1:1만남은 단순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됐으니 괜히 친절하면 상대가 좋아하는 걸로 혼자 오해하고 김칫국을 마시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동성에겐 스킨쉽을 잘 시전하지만 이성에게는 오해를 하지 않게끔 조심하는 편이다.
좋게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뼈아픈 비판과 분석 속에 휩싸이면 머릿 속이 하얘져서 바보가 된다. 난 비판에 취약했다. 칭찬+ 실질적 도움이 되는 해결과 보완점을 원하는데 비판만 일삼으면 의욕이 사라지고 회의감이 느껴진다. 사실 말 한마디, 명언 한마디로 힘을 받는 사람이라 그랬는지 내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비판이 고맙지만 말의 필터가 없음이 힘들었다. 될 이유를 찾아 아둥바둥하며 노력하는데 안 될 이유만을 얘기하니 괴로웠다.
상대가 들을 때 싫은 소리, 상대의 단점들을 지적할 말들, 팩트 폭력들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삼켜내고 지나간다. 여기까지인 관계라 생각하니 무언가 말하기보단 그냥 침묵하게 된다. 서로에게 상처만 줄 관계라면 여기까지인 것 같다. 말을 쌔게 뱉지 못하는 건 내가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던게 힘들었기 때문이니.. 솔직하게 칭찬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부는 못 하다보니 그냥 침묵을 일삼게 된다.
묻지 않고 나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기적이라는 말로 돌아왔는데..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고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실시간 정이 떨어지니 상대에 대해 더 알고 이해하고 싶은 맘이 사라졌던 것 같다. 나도 누구에게 푹 빠졌을 때 굉장히 귀찮게 굴고 끊임없이 연락하며 궁금해 했었다. 딱 사람만큼의 관심이었지 싶다.
주변에 친구들은 자길 좋아해주는 사람이면 좋아진다는데..
난 영 그게 안 된다. 만나다보면 호감이 생기겠지. 싶어 노력해도 호불호가 확실하게 있어서 그런지 영 안됐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겐 확실히 소훌하게 대하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에 만난 모든 이에게 그냥 사람이라 기본적으로 호감이 있지만 넘 이성적으로 비판하고 자신만이 옳다는 염세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은 똑똑하고 나와 다른 매력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은 하지만.. 함께 있다보면 내 자존감은 깎이고 소진되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그냥 사람이라 기본적으로 좋게 보는데 상처를 받으면 나도 나다운 모습을 잃고 어리숙한 바보가 되며 우울해지는구나. 그럴 땐 무례하게 동일하게 대처하게 되고 질문을 하기보단 침묵을 일삼게 된다. 어느 곳에선 깨발랄을 떨었는데 어떤 사람과는 굉장히 우울해져서 다른 사람같단 얘길 듣기도 했다.
그러니 마음이 없는데.. 좋아할려고 노력하는게 영 쉽지 않다는 걸 나는 그게 안되는 사람이란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솔직하게 좋고 나쁨이 드러나버린다. 그냥 사람으로서 친구는 가능한 듯 한데.. 난 호불호가 확실하구나. 싶었다.
귀여운 사람과 있음 귀여워지고 열정적인 사람과 있음 덩달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게 되고 긍정적인 사람과 있음 함께 긍정적으로 말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 매력적이고 멋있지만 안 맞는 사람이 있구나. 를 조금씩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관계에서 선빵을 치는게 왜 옳은 건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공격해서 얻는 건 상처밖에 없지 않나?
세상의 많은 것을 꿰뚫은 현자인양 사람을 우주 속의 먼지로
표현하는데..허무주의에 빠진 모습이 영.. 기운이 빠진다.
그 먼지도 아프고 기쁘고 감정도 있고
하고 싶은게 많을 수 있지.일이 재밌을 수도 있지.
그냥.. 내가 그런 상대에겐 참 부족한 사람이니
서로를 위해 보지 않는 것이 정답이지 싶었다.
난 그 다름을 이해하며 공존하길 바라는건데 본인의 옳음을 강요하면서부터..거기서 관계는 틀어지며 끝이 보이게 됨을 느꼈다. 그렇게 난 나를 잃고 눈치를 보게 됐고 눈치를 보니 소통하기 어려워지고 나도 해야 할말을 못 하면서 상대방이 얘기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의도치않게 빌런 짓을 시전하게 됐던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의 정답을 강요하는 사람을 보며 예전의 내 모습도 한번 생각하게 됐다. 그저 씁쓸한 생각이 드는 인연이었다. 내가 환경적으로 휘둘려 중심을 못 잡는 상태에서 비판을 일삼는 상대를 만나면 서로에게 상처만 가득 주는 상태가 되었다. 내가 여유있을 때는 웃으며 넘길 비판도 내가 여유치 않으면 엄청난 데미지가 오고 나도 또 다른 빌런이 된다. 그러니 여유를 찾기 위한 노력이 좀 필요하지 싶다.
오랫동안 읽지 않아 희미해진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 지금 읽고다시 글을 음미하면 20대 초반의 나와는 다르겠단 생각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