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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May 08. 2023

스트레스 해소법?

#6 여섯 번째 미션입니다.

오늘은 월요일이네요. 월요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계시는 분이 있을까요?

스트레스는 우울, 불안, 비만, 면역 불균형 등을 일으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회복 탄력성을 높여봅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그대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행복해지나요?

각자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공유해주세요. 없으시다면, 본인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해지는지 한 번 생각한 후 톡방에 공유해주세요.



흠..일단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행복하지 않을까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스트레스 그 자체를 활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드네요.





내가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지를 원인을 분석하고 근본적 해결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요. 그리고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서 벗어날려고 해요. 피할 수 없다면 스트레스를 준 대상을 이해할려고 노력해요. 내 마인드를 바꿔 상대를 이해해 볼려고 먼저 노력하고 말해도 변하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친절히 얘기는 해도 마음 속에 거리감을 두고 그 대상에게는 더이상 기대를 품지 않아요.


극한의 스트레스 시에는 얼음처럼 굳어서 아무것도 안 되는 방어기제가 있다보니 의도치 않아도 이도저도 못하고 혼자 있을려고 해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머릿 속 생각으로 머물면서 감정에 매몰되어 자기 객관화가 안되니까 잘 쓰려는 글보다는 쭉 부정적 감정들을 배설하듯 나만 보는 글을 쭉 적어서 시각화해요. 너무 감정적일 땐 글을 쓰며 '뿌엥'하며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극단적인 생각들도 튀어 나올 때가 있는데

글을 다시 읽어보면 '에이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허허' 하고 현타가 오며 자기 객관화가 되요.


최악의 극단적인 상황까지 토해내다보면

'에이~ 지금 이 정도면 양반이지. 버틸만하네. '

하고 약간의 자기 합리화도 하게 되요.


대상이나 상황이 왜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걸까?? 나는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걸림이 되었나? 나의 어떤 무의식이 저 사람의 행동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바라보는가?를 자문자답해봐요.


그러면 보통 과거의 기억에서 원인이 나와요. 그리고 스트레스의 원인은 타인이 아닌 그날의 나의 상태와 생각, 감정, 호르몬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요.

(스트레스는 내가 먹음 음식, 수면, 운동 여부,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무너지면 신체가 스트레스에 더 못 견디는 상태일 때 타격감이 크니 어느 정도 일정한 루틴을 다시 잡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되더라고요. 늦게 자고 운동을 안 하면 사람을 더 감정적으로 만들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만들어 부정적 사고를 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리고 상대를 원망하기보단 나의 아직 부족한 모습을 마주하며 저의 보완점을 생각해봐요. 그러다보면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 있었어도 사그라들고 보통은 이해하게 되요.


글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빌런 짓을 할 수 있는데 날을 세우는 자신이 부끄럽단 생각이 들어요. 상대방이 내게 준 상처도 그 사람도 상처가 있어서 날을 세우는 거겠거니. 생각하니 이해가 되고 넘어가게 되요. 그리고 약간 투사도 하다보니 죽인거 아닌 이상은 웬만하면 '너는 그렇군. '하며 넘어갈려고 해요. 반면교사 삼을 하나의 모델로 생각해요.


근데 계속 스트레스 상황이 반복되서 나를 힘들게 하고 상대가 아닌 나의 아직 미해결된 이슈로 인해 불편감을 자꾸 건드린다면 계속 볼 사이라면 앞에서 친절하게 유지하되 상대와 마음 속에 거리감을 두고 더 이상 상대에게 기대감을 품지 않고 약간 투명인간 대하듯 관심 스워치를 아에 꺼버려요. 그렇게 거리감이 생기면 오히려 편하게 사무적으로 대하고 관계를 어찌됐든 지속할 수는 있더라고요.


보통 일보단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을 쉽게 믿고 기대할 수록 실망하게 되니..

원망하거나 화내고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너무 기대하지 않는 연습, 모든 사람을 쉽게 믿지 않으려고 해요. 믿었다가 상처를 받으면 그게 너무 크게 다가오니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 한없이 믿고 상처도 받고 조금 오지랖을 피울 때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내 시간, 에너지, 내 삶도 바쁘고 소중하니 바쁘다보면 굳이 일일이 연락을 길게 이어가며 크게 관심두진 않을려고 해요.


공감하고 싶지 않아도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동 공감이 되버려서 타인들의 아픔이 자꾸 생각나고 걱정되서 과몰입해서 제 삶에도 부정적 감정이 영향을 미친 경험이 있다보니 요새는 일부로 공감하기, 오지랖 부리기를 차단하고 그 상황에서만 공감하고 타인과 나를 따로 분리하려는 노력을 해봐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고 내 울타리 안에 든 사람만 챙겨도 혼자 내 삶을 챙기기에도 삶은 사실 벅차니 요새는 신경 쓸 관계와 우선순위를 일부로 좀 줄일 생각을 해요.


어릴 땐 글을 쓰거나 혼자 그림을 그렸고요.

운동을 배운 이후로는 몇시간씩 운동에 매진했어요. 사람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안 이후로는 스트레스 시 여러 사람에게 힘듦을 하소연하고 이야기를 했어요. 근데 거기서 그 이야기하는 대상이 넘 많아지니.. 오히려 거리감이 생기는 걸 알아서 이젠 소수의 들어줄만한 사람, 안전하게 믿어줄 수 있는 대상에게만 이야기를 할려고 해요.


어디까지가 내가 가져가야 될 경계일까? 건강한 바운더리와 기준은 무엇일까? 어디까지 얘기해야될까? 에 대한 고민이 들어요.


요새 힘들어보이는 사람이 많다보니 계속 말하고 다니기보단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 편하단 생각으로 되돌아왔어요. 내가 부정적인 말을 뱉음으로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했으면 어쩌지? 좀 미안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내 스트레스, 고민거리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스트레스 상태를 들어주고 싶단 생각에 그림책 필라같은 작업 거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근데 이것도 그만큼 내가 에너지가 있을 때 들어줄 수 있는 작업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새는 공급자보다는 나를 채우는 작업, 컨텐츠를 소비하는 작업을 즐길 필요성을 느껴요. 내가 여유있을 때 좋은 걸 공급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스트레스 시에는 호흡하기, 뒹굴뒹굴 잠자며 늘어지기, 글쓰고 분석하기, 원인으로부터 벗어나기, 다른 좋아하는 교육이나 컨텐츠들을 배우고 소비하기, 공감되는 에세이 읽고 위로 받기, 친구랑 대화하기, 비슷한 상황 독백집 찾아서 감정 토해내듯 읽어보기, 펑펑 울기, 등산, 필라테스, 웨이트, 따릉이, 스쿠버 다이빙, 따뜻한 물에서 씻기, 달달한 빙수 조지기, 산책하기, 멍때리기, 바쁘게 살기, 상담 등등 여러가지를 그때그때 시도해봤어요.


나를 돌아보며 '알아차림'한 이후에는 스트레스와 나의 결핍을 동력삼아서 '자기계발'에 매진할 거리를 찾고 거기에 몰두하며 지내는 것 같아요.


작년까진 힘들 때 사람을 많이 찾고 대화했었는데 내가 없이 타인에게 휘둘렸다는 생각이 들고 나를 너무 드러내고 뭐든지 맞다. 라는 호응으로 인해.. 상대에게 가스라이팅을 할 여지를 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새는 답정녀처럼 마음 속으로 내 생각을 어느 정도 정해놓고 사람들에게 여러 솔루션과 의견들을 듣고 혼자서 +-  고민과 스트레스를 보완하고 소화시키는 시간을 가지곤 해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바라보고 그 관계에 양극단에 대립되는 부분들을 관찰해요. 그러다보면 각자의 입장과 의견은 서로가 옳다하는 근거들을 모두 가지고 있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참 모호하단 생각이 들며 그 다양성 안에 중간 지점 적절한 상태는 무엇일까? 를 생각해보게 되요.


그러다보면 상황과 환경,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서로를 모르기 때문임을 느껴요. 사람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한 좁은 시야를 갖고 하지 않은 영역에 대해 비판하는구나. 를 느껴요. 그런 간극을 바라봄이 재밌고 나도 그때 그때 필요한 상황, 선택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껴왔음이 보여 재밌어요. 사실 양극단의 다양한 의견이 모두 재밌고 내게 강요만 하지 않고 누군가를 함부로 비난하지만 않는다면 둘다 좋은 것 같아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다보면 스트레스와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에 도움을 받을 때가 종종 있어요.


내 시간이 없으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 속에 휘둘리는 것 같고 이것도 저것도 다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어서 내 주관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깊은 감정, 생각과 마주하는 혼자있는 시간을 좀 즐기려고 해요.


사람을 많이 만나면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는 많이 생기고 즐겁기는 한데 내가 해야될 걸 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사람이 있으면 관심이 가고 오지랖 부리고 싶고 그냥 이것저것 사람들이 궁금해지고 자꾸 물어보고 수다를 떨고 싶더라고요.


이전에 성취한 경험은 있으니 스스로 할 수 있단 건 알고 있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을 하며 난 의지가 약하다고 이야기하며 아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상황에 몰아 넣을려고 해요. 그렇게 하면 매몰된 감정에서 벗어나게 되고 내 의지는 약했어도 목표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는 무언가를 성취할 강한 동력이 되기도 해요. 그러니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셋팅하고 목표를 최대치로 올려놓고 그 안에서 일부라도 성취했다면 만족하는 편인 것 같아요.


내가 자만하고 대놓고 잘났다. 라고 이야기하고 목표치를 최대한 높이면 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져 좌절하게 되니.. 애초에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전제하에 노력하고 목표치를 정하고 성취를 하며 그 성취감을 즐기다보면 그 과정 안에서 감사함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너 힘들어보여. 하면 오히려 뿌엥.. 울게 되고..

에이~ 그거 별거 아냐. 하면 그런가?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먼저 내 감정 상태를 알아주는 뿌엥.. 하는 과정 이후에 별거 아니라고 툭 건내주는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별거 아냐. 하고 넘기면 그거대로 힘들더라고요.


처음부터 긍정적이고 좋은 면만 보고 좋게 넘겨. 웃으면서 회피하고 빠르게 넘겨도 봤었는데 회복탄력성이 좋아지긴 힘든 것 같고 힘든 시기가 뒤늦게 올라오며 비슷한 사건이 중첩되면 끝나지 않은 미련이 찌질한 모습과 문제들로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놓고 별로인 최악의 상황인 나를 마주하는 작업을 해요. 미련 안 남기게 별로인 모습을 깊게 파고 탐닉해봐요. 그럼.. '아이씨 나 겁내 별로네. 진짜 밑바닥이네. 그래도 사지멀쩡하고 아직 죽진 않았으니 뭐 올라갈 일 밖에 없네.' 하고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뭐든지 아둥바둥 시도하고 노력은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별로인 모습을 알고 문제의 원인을 인정할 때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힘든 과정들이 새삼 감사하게 다가와요. 그래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보단 꼰대로 머물지 않고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니 나름 나쁘지 않네. 다행이네.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 별로라고 하는 부분, 단점을 얘기하면 많이 고민했던 부분과 맞닿아 떨어진다면 힘들고 아프지만 쉽게 인정하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감정적 공감이 먼저는 선행되야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걸 스스로에게 셀프로 먼저 해주다보면 바로 뼈아픈 진실과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제시했을 때 빠르게 납득하며 그 힘듦을 벗어나게 하는 근본적인 도움을 마음으로도 받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어릴 땐 단순한 감정적인 공감을 원했는데.. 사람들을 겪고 상처가 하나 둘 쌓일 수록 단순 회피하며 긍정적인 것만 보자는 정신 승리보다는 이 상황을 벗어나게 만드는 실질적 해결책 제시와 팩폭이 좀 더 사이다로 느껴지고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감정적 공감은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영역이니.. 내가 잘 보지 못하는 실질적 해결책이 더 도움이 되고 오히려 공감받는 느낌을 받는 것보면 나이가 들 수록 점점 이성적인 부분에 더 가까워지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두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감정적인 공감과 솔루션이 제시될 때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넓은 시야를 갖고 싶단 생각을 해요.


나의 단점을 마주하는 귀찮고 힘든 작업들을 해보면 그 힘들어하는 간극이 조금씩 좁혀지며 좀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미련한 짓을 하더라도 그걸 조금씩 줄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자신감이 떨어진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알아차림을 하며 스스로에게' 있는 그대로 소중해.'를 얘기하며 살아있음, 존재 자체에 대한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게 좋은 것 같아요.


셀프로 스스로의 장점들을 얘기해주고 좋아하는 것들,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볼려고 하고 눈앞에 시야가 흐려지고 숨이 셔지지 않았던 죽을 것 같던 순간에 대해서 생각해봐요.


그럼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에 소중함을 느끼게 되요. 아이처럼 순수하게 조금은 바보같이 살아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상처받아도 실패해도 부딪혀보자.를 할 수 있는 힘이 되더라고요.

편안하게 머물기만 하면 사실 삶은 행복해지지만 유유자적하며 발전은 없는 상태로 정체되는 느낌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성장하기 위해 이제 어느 정도 회복되서 스트레스를 활용할 때는 자신의 밑바닥 상태를 다시 이야기를 해요. 남이 까는건 괴로워도 내가 하는 팩트 폭력은 동력이 되더라고요.


사실 내 장점을 잘 알고 있으니 스스로를 까내리면서 밑바닥인 상태를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의 빼곡한 장점들을 잘 알고 있고 그게 완충작용을 해주니 '너 밑바닥이야. '라는 걸 알게 되더라도 물론 힘들긴 하지만 완전히 무너질 정도로 타격이 크진 않아요. 오히려 밑바닥이란 생각이 자유롭게 시도할 용기를 주고 동력이 되더라고요.


'어쩔건데.. 씨.. 나 쥐뿔도 없다. 무서울게 없는 인간이야! 그러니까 난 어딜 던져나도 일단 입에 풀칠은 할 의지가 있는 살아남을 인간이야.ㅋㅋㅋ' 라고 생각해보는거죠.


일단 최소한 난 사지는 멀쩡히 붙어있으니까요.

남들 비교하고 비판해서 뭐해요. 내 삶 책임져 줄 사람들도 아닌데 그 시간에 내 삶을 밑바닥에서 어떻게 끌어올릴까?를 생각하고 행동해야죠.


그래서 스스로에게 '넌 밑바닥이야. 좀 더! 더! '하고 채찍질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똑똑하진 않지만 무식하게 버티는거 반복하는건 나름 자신있으니까요.


어릴 적 선생님한테도 '대기만성' 소리도 들어봤고 대학생 때 선배들한테 '넌 어딜가든 성공할거야. '란 말도 들었으니 나의 행동이나 가능성을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고 천재나 재능있는 똑똑한 사람들 부모님께 덕을 본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고 크게 한탕에 성공은 못하더라도 의지와 노력하는 건 자신있으니까 어딜가도 굶어 죽지는 않겠죠.


계속 쓰러지고 밑바닥을 찍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스스로를 믿어요.


그리고 없이 살아봐서 행복 역치가 낮아서 사소한거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단 것도 나름 장점인 것 같아요.


원래 한가득 있었던 사람들은 갑자기 실패하면 굉장히 좌절하는데 애초에 뭐가 없었으면 그 사소한 행복을 더 소중히 누리고 즐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장점들을 갖고 앞으로 겁내 열심히 노력하면 뭐라도 되겠죠. 뭐가 됐든 지금보단 나아지지 않을까요? 성공하는 사람들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결핍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니 뭘해도 하지 않겠냐! 싶어요.


스스로의 게으름을 잘 아는 만큼.. 목표치를 크게 잡아두면 그래도 절반이라도 미칠 수 있으니 아무것도 없어도 계속 하고 싶은 것들을 얘기하며 시도할 동력이 되곤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과정들을 모두 정리하고 회복할려면 타인들과 대화하기를 그치고 스위치를 끄고 잠깐 혼자 몰입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럼 스트레스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피하는 걸 넘어 좋은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요. 그러면 이 스트레스도 내게 힘을 키워 줄 필요한 즐길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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