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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충신 Oct 19. 2022

울리지 않는 전화번호

내가 태어나 돌이 되었을 때

농사꾼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

손에 가장 먼저 잡을 수 있도록

엄마는 상차림 가까이에 연필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나서 손이 바위가 되도록

엄마는 텃밭에서 자란 열무를 팔아

연필과 공책을 사 주셨다.

그 연필로 괴발개발 쓰기 시작한 삶의 흔적들이

한 갑자의 돌을 지나서

이젠 삽자루를 쥐고 서성거리고 있다.


삼일이에 이구삼삼, 엄마의 전화번호다.

이제 이 전화번호는 울리지 않는다.

지우지 못한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엄마의 벨소리를 기다려보다가

누이한테 엄마한테 전화 없었냐고 물어보니,

전화는 울리지 않고

아직 엄마의 전화번호를 못 지우고 있다는 문자가 온다.


내 핸드폰 연락처에는

천여 개의 전화번호가 모래알처럼 박혀 있는데

퇴임을 하고 나니

오백 개의 전화번호가 연락이 없고

삽자루를 쥐고 있으니

다시 오백 개의 전화번호가 울리지 않는다.


기억도 안나는 전화번호는 쌓여만 가고

아무도 모르게 떠나는 곳마다

코로나 재난문자만 귀신처럼 따라붙는다.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통장번호는 수시로 들락거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안내문구는 인형처럼 카톡거린다.


"왜 전화도 없냐?"

엄마의 전화번호가 울릴 것 같아

울리지 않는 전화번호를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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