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충신 Oct 19. 2022

일상, 그 당혹스러운 일들

   가을이 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생성과 소멸, 그리고 변화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합니다.  창문을 닫으니 풀벌레 소리도 잠잠합니다. 이제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이 곧 다가온다는 징조이겠지요. 내 기억력도 점차 겨울로 가는 마차에 몸을 싣고 있습니다.

   외출할 때나 시장 보러 나갈 때, 챙겨야 할 중요한  물건이 세 가지 있습니다.  핸드폰, 지갑, 자동차 열쇠입니다. 그중에서  핸드폰을 자주 놓고 나갑니다. 핸드폰을 찾으려면 내가 어디에 놓았었는지를 기억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온 집안을 다 찾아 헤매다가 내 뒷주머니에서 찾습니다.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니, 먹는 약이 많습니다. 예전에 어머니 보고 너무 많이 약을 드신다고 투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아침 공복에 눈이 좋아지는 약과 프로폴리스를 먹습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심장병 약을 먹고 저녁식사 후에는 전립선약을 먹습니다. 온몸이 부실 공사장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식사 후 한참 지나다 보면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약을 빼놓지 말고 먹으라는 의사의 말은 칼 같이 기억해 내어, 다시 약을 먹곤 합니다. 지나치게 약을 많이  먹는다는 것은 몸에 좋을 리 없습니다. 앞으로는 잊어먹더라도 약을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같은 상황이 되면 약을 또 먹습니다. 약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이 또한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난 다음, 물 내리는 것을 가끔 잊을 때가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 오줌발이 약해져 갑니다. 그러면 좌변기에 오줌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닦고 세면기 및 좌변기 물청소를 하고 난 다음, 물을 내리겠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물 안 내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오줌도 누기 전에 물부터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치매 수준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인가 망각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잊어버린다는 것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내용이었습니다. 공포나 슬픔 등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망각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살면서 잊어먹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자꾸 망각해 버리고, 망각해야만 하는 것은 잊지 못하는 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징조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다 편의주의적 발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굳이 구분하려는 발상이 삶을 제한시키고 자괴감에 빠져들게 하는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잊어먹으면 잊어먹는 대로 기억나면 기억나는 대로 그냥 사는 것이 가장 편한 삶의 방편일 것 같습니다. 오줌도 싸기 전에 변기 물을 내린다고 해서 죽을죄를 지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울리지 않는 전화번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