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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아는데 엄마는 모르는 얘기

아들 vs 아빠. 그리고 타자의 인문학

by 무당벌레

쑥 자란 아들의 아빠들은 밥 먹듯 느끼는 게 있다. 근데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야기다. 엄마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드러나지 않는 궁금한 얘기. 바로 모자관계와는 다른 부자관계의 치열한 세계다. 군인 아들의 아빠는 얼마간 그걸 더듬어 보고 싶어진다.


대표적 차이점은 둘 사이가 틀어질 때 두드러진다. 이르면 살 비비는 시기에, 보통은 사춘기를 거치며 슬슬 틀어진다. 아들과 확실하게 틀어진 엄마는 아들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대개 ‘무시할 존재’ 정도로 자리매김 되는 듯하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불필요한 존재거나 좀 모자란 존재거나 그도 아니면 귀찮은 존재 정도.


아들과 틀어진 아빠는 그렇게 무시해 버릴 존재가 못 된다. 절대로…. 압도적인 존재였기에 말이다. 어린 시절 아들에게 대부분의 아빠는 사랑 보자기 이상이었다. 슈퍼히어로, 절대 진리, 절대 도덕이었다. 질 좋은 애착관계일수록 더 그랬다. 장차 어른이 될 아들은 아빠 같은 아빠가 미래의 자기 정체성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딸은 제아무리 살가워도 자라서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은 안 한다.


아들은 어느덧 목격한다. 아빠가 아무 것도 못 되는 사람임을. 시답잖은 샐러리맨 주제에 교통법규를 마구 어기거나 운전 중에 욕을 뱉는다. 엄마에게 소리 지르며 가정 평화를 위협해 댄다. 대화를 하자더니 구닥다리 생각을 들이댄다. 그게 오해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아들의 절대 믿음과 추앙을 짓밟는다. 사과 없는 꼰대인 건 기본이다. 알고 보니 종북 좌파 꼰대거나 수구 꼴통 꼰대인 건 서비스다. 질 좋은 애착관계였을수록 배신감과 상실감은 진하다.


압도적 슈퍼맨이자 확고한 자기 미래였기에 무시해 버리기 힘든 존재다. 대신 ‘틀린 사람’으로 여긴다. 나아가 상실감을 겪게 한 미운 존재, 혐오하는 존재, 심지어 경멸하는 존재, 다음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위해 고치거나 꺾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세월이 지나 다행히 원만해졌을 때조차, 엄마는 안식의 거처이자 애틋함의 대상으로 돌아오는 데 비해 아빠는 존경과 반성의 대상으로 부활한다. 오가는 게 다르다.


사랑의 방식이 다른 모자지간은 잔소리거리를 놓고 다툰다. 기분은 건드려도 바닥을 건드리진 못하지 싶다. 부자간에는 공식전이든 비공식전이든 인간관, 세계관, 도덕관, 직업관, 정치관, 사회관을 놓고 겨룬다. 아빠와는 다른 종의 어른 남자를 지향하게 되는 아들이 처음 통과하는 장엄한 인정 투쟁이다. 그때의 아빠는 대개 어른 실격이다.


아빠는 마음과 달리 그 종합격투에서 원리적으로 아들의 코치나 심판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격투 상대로 링에 불려나왔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엄마는 대개 라운드걸을 하고 있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배신감은 아빠의 자존감을 건드린다. 고단하고 불안한 사회 생활과 가족의 미래에 대한 오랜 책임감을 감당하면서 자기 모든 걸 아들에게 그저 선물하려 했을 따름이다. 안타깝게도 아빠의 배신감은 아들이 내뿜는 배신감의 제곱에 비례한다. 깊은 숨을 삼킨다. 마침내 광선검이 "주화~앙" 빛을 토한다. "쿠후우~. 아이, 엠 유어 퐈더."


그렇게 시작되는 충돌은 진보와 보수간 손가락질 저리 가라다. 기어이 명예를 깎아 존재를 건드린다. 엄마에게 무시 당하면 길어야 하루 화나고 만다. 아버지에게 당한 무시나 불신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그게 폭력이라면 더구나.


모자지간의 주요 이슈는 사랑의 태도와 방식인 듯하다. 애틋함과 섭섭함의 문제다. 쑥쑥 자라는 아들과 아빠는 다르다. 충돌하는 세계관의 강고한 대립과 적대와 혐오다. 그러기에 좀 다른 이슈가 절실해진다. 대등해지는 사람간 서로 맞선 공감을 넘을 공존의 가능성, 그러니까 낯선 가치관에 보내는 상호 관용과 상호 인정의 이슈다.


상호 관용과 인정을 통한 화해의 이야기.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문화이며 누려본 적 없기에 전해 주지도 못한 문화. 다르고 부족한 타인 간의 상처가 무엇으로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가장 깊고 열띠고 장엄하며 버거운 무대는 부자 관계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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